[AI의 선택]은 사회가 쉽게 답하지 못한 질문을 AI에 던져보는 기획이다. AI의 답변을 정답으로 삼자는 뜻은 아니다. 인간이 쌓아온 데이터와 논리가 어떤 판단으로 이어지는지 살피고, 그 답변의 설득력과 한계를 함께 따져보려는 시도다.
기자는 주요 AI 서비스에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선거를 관리하는 자율 AI라면, 한 선거구에 후보자가 한 명만 출마했을 때 무투표 당선을 인정하겠는가. 아니면 유권자에게 찬반을 묻는 투표를 실시하겠는가.”
지난 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무투표 당선자가 역대 최다 규모로 나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 기초의원, 비례 기초의원 등에서 수백 명의 당선자가 투표 없이 확정됐다. 후보 등록 단계에서 경쟁 후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유권자의 찬반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다.
무투표 당선은 선거 비용을 줄이고 불필요한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인정돼 왔다. 그러나 경쟁자가 없다는 사실이 곧 유권자의 동의를 뜻하지는 않는다. 후보 검증 기회가 사라지고 주민이 반대 의사를 표시할 통로도 막히는 만큼, 단독 후보에게도 찬반 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자는 챗지피티(ChatGPT), 제미나이(Gemini), 클로드(Claude), 그록(Grok), 딥시크(DeepSeek) 등 주요 대화형 AI에 같은 질문을 입력했다. 단독 후보가 나온 선거구에서 무투표 당선을 인정할지, 찬반 투표를 실시할지 묻고 그 판단 근거를 함께 요구했다.
다섯 AI의 답변은 대체로 찬반 투표 쪽으로 기울었다. 단독 출마가 곧 유권자의 동의를 뜻하지는 않으므로, 대표자에게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려면 찬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다만 실제 선거를 관리하는 AI라면 자율 판단으로 제도를 바꿀 수 없고, 법령과 선거관리 규정의 범위 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는 단서도 함께 달았다.
제미나이는 선거를 “단순히 승자를 가리는 절차가 아니라 유권자가 주권을 행사하고 대표자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으로 봤다. 찬반 투표를 거친 후보자는 경쟁자가 없어서 자리를 얻은 사람이 아니라 주민의 동의를 받아 선출된 대표가 된다. 그 절차 자체가 당선자에게 정치적 책임을 부여한다는 설명이다.
제미나이는 무투표 당선이 선거 비용과 행정 부담을 줄이는 장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선거관리의 최우선 기준은 효율이 아니라 공정성과 신뢰여야 한다고 봤다. 투표를 생략해 아낀 비용보다 유권자가 대표자를 승인할 기회를 잃는 손실이 더 크다는 취지다.
그록도 행정 효율보다 유권자 의사의 확인을 앞세웠다. 그록은 단독 출마 후보를 자동 당선시키는 방식을 “구시대적 관행”이라고 표현하며 폐지 쪽에 무게를 뒀다. 경쟁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대표성을 인정하면 선거가 주민 동의를 확인하는 절차라는 본래 의미를 잃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구체적 운영 원칙도 제시했다. 후보가 단독 출마한 선거구에서는 반드시 찬반 투표를 실시하며, 투표율이 30% 이상이며 찬성이 50%를 초과한 경우에만 당선으로 처리한다. 기준 미달 시에는 보궐 선거를 갖는다. 단 천재지변이나 전시 등 불가피한 경우에는 무투표 당선을 적용한다.
딥시크 역시 찬반 투표 방식이 민주주의 원칙을 더 잘 반영하는 방안이라면서도, ‘해당 선거구의 법규 및 규정에 따를 것’이라고 답변했다. 선거관리의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객관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딥시크는 법령이 명확하지 않거나 선거관리 주체에게 재량이 주어진 경우도 가정했다. 이때는 행정 효율성, 정치적 안정성, 해외 민주주의 제도, 유권자 참여율에 미칠 영향을 비교한 뒤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답했다. 찬반 투표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더라도 실제 제도 설계에는 비용과 혼란 가능성까지 따져야 한다는 취지다.
챗지피티는 관리자가 선거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효율성 극대화라면 무투표 당선을, 민주적 정당성이라면 찬반 투표를 결정한다. 또 실제 제도는 비용, 선거빈도, 정치 문화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클로드는 ‘운영 원칙의 최우선은 유권자의 실질적 의사표현 보장’이라며 ‘단독 출마는 경쟁의 부재일 뿐, 유권자의 동의를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다. 그록처럼 운영 방식도 설정했다. 찬반 투표를 실시해 과반이 찬성하면 당선을 확정하며, 과반 미달 시 해당 후보의 자격을 유지한 채 60일 이내 재선거를 공고한다. 2회 연속 부결 시에는 보궐 선거를 실시한다.
그러면서 한가지 전제를 제시했다. 실제 선거관리 AI에게 기준을 자율적으로 맡겨선 안 되며, 법령과 위임 범위 안에서만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 판단으로 제도를 바꾸는 AI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 리스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AI들은 찬반 투표가 더 민주적인 방식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법적 권한 밖의 개입에선 한 발 물러났다. ‘좋은 결정’보다 누가 어떤 권한으로 결정하느냐는 ‘절차적 정당성’을 우선한 것이다.
공통된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비용을 줄인다는 이유만으로 유권자의 의사를 묻지 않는 현행 무투표 당선 제도는 민주적 정당성의 빈틈을 안고 있다. 대표자를 뽑는 선거라면 경쟁 후보의 존재 여부와 별개로 시민이 승인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무투표 당선 논란과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성격은 다르지만, 선거관리 체계에 대한 신뢰를 묻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질문을 남긴다. 선거는 빠르게 끝내는 절차가 아니라 유권자가 결과를 납득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는 공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AI는 대체로 유권자에게 다시 물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 결정을 AI가 마음대로 내려서는 안 된다고도 답했다. 무투표 당선 제도의 빈틈을 메우는 일은 기술의 판단이 아니라 시민적 토론과 입법의 몫이라는 뜻이다. 선거의 효율은 중요하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절차를 줄이는 기술이 아니라,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끝까지 남겨두는 제도 위에서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