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건설 현장의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은 ‘기준의 부재’가 아닌 ‘이행의 공백’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안태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관으로 열린 ‘LH 안전관리 솔루션 릴레이 정책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현장의 구조적 한계를 짚고, 실질적인 재해 예방을 위한 발주청의 개입 성과가 공유됐다.
오태근 인천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위험성 평가, 작업 계획, 안전 교육 등 제도적 장치는 마련돼 있지만, 이 기준이 현장에서 지켜지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체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장 이행의 공백은 관리 역량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소규모 현장에서 더욱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분석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체 건설업 사고 사망자의 약 65.6%가 공사 금액 50억 원 미만의 소규모 현장에 집중됐다.
업계는 “현행 체계에서는 법정 안전관리자가 각종 서류 작업과 행정 업무에 치여 정작 실제 작업 공간을 상시 순찰할 여력이 부족한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꺼내든 카드는 발주청 주도의 ‘안전감시단’ 투입이다. 시공사 소속 안전관리자가 서류와 법정 업무에 집중하는 동안, 현장 위험 요인을 밀착 점검하는 별도의 지원 조직을 발주청 예산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날 진상훈 LH 건설안전팀 차장이 공개한 실증 데이터는 제도의 예방 효과를 뒷받침한다. 진 차장에 따르면, LH는 재해가 잦았던 4개 현장에 안전감시단을 시범 투입한 결과 총 1천767건의 위험 요인을 즉시 개선하며 무재해 현장으로 전환하는 성과를 냈다. 이후 고위험 현장 32개소를 대상으로 한 1단계 시범 운영에서는 미배치 현장 대비 재해율이 29.9% 낮았다. 본격 운영에 들어간 105개 현장의 데이터 분석 결과에서도 운영 현장의 재해율은 0.190으로 미운영 현장(0.311) 대비 32.36%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현장의 반응도 우려와 달랐다. 통상적인 감시 인력 추가에 대한 반발 대신 연장 요구가 이어졌다. 이상조 LH 스마트건설안전본부장은 “초기에는 3개월만 지원할 예정이었으나, 시공사 소장과 안전관리자가 현장 감시와 서류 업무를 분담해 효율이 높아졌다며 운영 연장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이러한 예방 성과의 배경으로 단순 인력 충원이 아닌 ‘PDCA(계획-실행-평가-개선) 사이클’의 형성을 꼽았다. 감시단이 현장에서 위험을 조기 발견해 시정을 권고하면, 시공사가 이를 즉시 조치하고 감시단이 재확인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진 차장은 발주청이 설계부터 시공까지 안전에 폭넓게 관여하는 예방 체계가 해외 주요국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제도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영국은 ‘CDM(건설설계관리) 규정’을 통해 발주자가 안전관리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제공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독일은 ‘건설현장안전보건시행령’에 따라 발주자가 독립적인 안전보건조정자(SiGeKo)를 선임해 여러 공종 간의 위험을 조정한다. 싱가포르 역시 직장안전보건법과 ‘DfS(설계안전성검토)’ 제도를 통해 설계 단계부터 발주자 참여를 규정하고 있다.
오 교수는 “안전감시단 도입은 단일 시공사가 안전과 공정, 비용을 모두 통제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발주자 참여형 예방 체계로 넘어가는 국제적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