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에이치비에코(YHB ECO)는 작업환경 개선 장비의 영역을 넓히며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과거 생산을 보조하는 설비로 여겨졌던 오일미스트 집진기와 절삭유 관리 장비를 근로자 안전과 생산성, 환경 규제 대응을 뒷받침하는 핵심 설비로 끌어올렸다. 근로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ESG 경영과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깨끗한 작업장이 기업 경쟁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판단이다.
본지는 창업주의 정신을 이어받아 2세 경영을 이끄는 윤하늘 부사장을 만나, 기존 30여 개국 수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선진 시장인 미국 공략을 가속화하는 글로벌 확장 전략과 제조업 현장에서 바라보는 실용적 AI 전환(AX), 그리고 40년간 지켜온 ‘신뢰’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30여 개국 수출 기반 위에 ‘미국 시장’ 정조준… 핵심은 현지 A/S망
와이에이치비에코는 현재 전 세계 30여 개국에 오일미스트 집진기 등 작업환경 개선 장비를 수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 해외 영업망을 발판으로 북미 시장 진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에는 반도체 장비와 자동차 부품 등 제조업 분야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계열사가 다수 포진해 있다. 국내 생산 현장에서 와이에이치비에코 장비를 사용한 기업들이 미국 사업장에서도 같은 제품을 찾고 있지만 구매에 앞서 확인하는 조건은 분명하다. 현지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집진기는 설치가 복잡하지 않고 고장률도 낮다. 통상 1년에 한두 차례 필터를 교체하면 관리가 가능하다. 다만 해외 고객에게 작은 고장도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은 크다. 시카고 대리점에 이어 한국 제조기업이 밀집한 애틀랜타와 댈러스 등을 중심으로 서비스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
회사는 중국과 일본, 베트남, 태국, 인도 등 주요 수출국에서도 대리점과 협력사를 통해 설치와 유지보수를 지원해왔다. 미국에서도 같은 체계를 갖춰 단순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겠다는 구상이다.
장비를 수출하는 것만으로 거래가 끝나는 시대는 지났다. 고객이 실제로 장비를 운용하는 동안 발생하는 문제까지 책임져야 재구매와 장기 거래로 이어진다. 미국 현지망 구축을 단순한 영업 확대가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을 완성하는 과정으로 보는 이유다.
‘집진기 한 대’에서 작업환경 전체로
고객의 요구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공작기계에서 발생하는 오일미스트를 제거할 집진기 한 대를 찾았다면 이제는 공기질과 절삭유 오염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요구한다.
공작기계 내부를 순환하는 절삭유는 금속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고 마찰을 줄인다. 하지만 탱크 아래에 미세한 금속 칩이 쌓이면 산화가 빨라진다. 기온까지 오르면 악취가 심해지고 작업자의 피부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와이에이치비에코는 절삭유를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반복된다고 봤다. 오염을 촉진하는 탱크 하부의 금속 찌꺼기를 제거해야 절삭유의 수명을 늘리고 작업환경도 개선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 절삭유 속 금속 칩을 흡입해 제거하는 ‘절삭유 칩 클리너’를 개발했다. 절삭유 표면에 뜬 기름을 걷어내는 오일 스키머와 악취 저감 제품도 제품군에 추가했다. 공기 중 오일미스트 제거에서 출발해 절삭유의 품질과 교체 주기까지 관리하는 방향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 셈이다.
윤 부사장은 절삭유 교체만으로는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절삭유는 기온이 오르면 산화가 빨라지고 심한 악취를 낸다. 작업자의 피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절삭유만 바꿔서는 충분하지 않다. 탱크 아래에 쌓인 금속 칩을 제거해야 오염의 원인을 줄일 수 있다.”
절삭유가 쉽게 오염되면 교체 비용과 폐절삭유 발생량이 함께 늘어난다. 처리 과정에서 환경 부담도 커진다. 김해를 비롯한 일부 산업단지에서는 폐절삭유 무단 방류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단속과 제재가 강화되고 있다. 현장 근로자들도 악취와 유증기, 피부 질환 위험이 적은 작업환경을 요구한다.
회사는 이런 변화에 맞춰 소비전력을 낮춘 장비와 자동 세척 기능을 적용한 장수명 필터를 개발했다. 필터 전체를 버리지 않고 내부 여재만 교체할 수 있는 구조도 도입했다. 유럽 CE 인증과 유해물질 제한 기준인 RoHS 인증을 취득하며 해외 시장 진입에 필요한 요건도 갖췄다.
북미와 유럽 바이어는 초기 구매 가격만 따지지 않는다. 연간 전기료와 필터 교체비, 유지보수 주기를 포함한 총소유비용(TCO)을 묻는다. 제품 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을 수치로 요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선진 시장에서는 막연히 친환경 제품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전력 사용량과 필터 교체 횟수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초기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장기적으로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을 수치로 설명해야 한다.”
와이에이치비에코는 제품별 전력 절감 효과와 필터 수명, 유지비용을 정량화하는 작업을 강화하고 있다. 환경성을 기업 이미지 차원의 구호가 아니라 구매 판단에 활용할 수 있는 경제적 지표로 바꾸려는 시도다.
해외 고객과의 접점도 넓힌다. 올 하반기에는 공조와 반도체, 방산 분야 주요 전시회에 참가할 계획이다. 오는 10월 미국 현지 전시회 참가도 검토하고 있다. 특정 업종에 머물지 않고 오일미스트와 절삭유 관리가 필요한 다양한 제조 현장으로 고객군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AX는 생산성 돕는 도구”… 회의·소통 혁신하되 제조업 본질 지킨다
산업계 전반에 불어닥친 인공지능(AI) 및 디지털 전환(AX·DX) 열풍에 대해 윤 부사장은 실용적 접근을 택했다. 공장 현장의 기존 작업 체계를 단번에 흔드는 무리한 AX 도입보다는, 업무 효율성 개선이 시급한 본사 영업 및 관리 업무부터 AI를 적용하고 있다.
서울 본사에서는 AI 회의록 비서를 도입해 회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이력을 추적 관리하는 체계를 굳혔다. 윤 부사장은 “과거에는 클라우드에 무수히 많은 자료를 올려두고도 1년 전 논의했던 개발 아이디어나 솔루션을 잊어버려 같은 회의를 반복한 적도 있다”며 “AI 비서가 회의 맥락을 짚어주고 후속 관리를 지원하면서 개발 기간을 수개월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사내 협업 체계도 구글 워크스페이스를 중심으로 전환했다. 해외 바이어의 구매 문의를 분류하고 요구 사양을 분석하는 일부터 맞춤형 견적서를 작성하는 과정까지 영업 행정의 일부를 자동화하고 있다.
AI 번역과 실시간 통역 기술은 해외 고객과의 소통 방식도 바꿨다. 과거에는 현지 담당자나 중간 조직을 거쳐 의사를 전달했지만 지금은 본사 해외영업 부서가 화상회의와 이메일을 통해 바이어와 직접 소통한다.
윤 부사장은 “본사에서 바이어와 직접 소통하게 되면서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졌고, 의사 전달 과정의 정보 왜곡도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업무 고도화와 주력 제품군의 탄탄한 수요 증대에 힘입어 와이에이치비에코는 올해 상반기 호실적을 달성한 데 이어 하반기에도 상승세를 예고했다.
그러나 윤 부사장은 AI에 매몰돼 목적을 잃는 ‘본질의 전도’를 경계했다. 윤 부사장은 “시류에 휩쓸려 겉보기에만 화려한 AI 툴이나 자동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집중하다 보면, 정작 제조업 핵심인 제품 개발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겠더라”고 털어놨다.
이 같은 판단은 미국 출장 중 구글 본사 엔지니어와 나눈 대화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최첨단 AI 기술을 다루는 엔지니어조차 서비스업과 달리 제조 현장의 AI 도입과 인력 대체는 아직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회사는 AI를 받아들이는 기준을 실제 생산성과 고객 만족을 높일 수 있느냐에 두고 있다. 적용 자체보다 결과를 따지겠다는 것이다.
“AI를 잘 활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무게 중심은 제조와 제품 개발, 고객 서비스에 있어야 한다. 그 일을 더 잘하도록 돕는다면 적극적으로 쓰되 유행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입할 필요는 없다.”
40년간 지킨 약속… “결국 사업의 답은 ‘신뢰’”
윤 부사장은 피지컬 AI와 로봇 자동화가 확산하면 하드웨어 생산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제품 가격도 빠르게 평준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누구나 비슷한 설비와 기술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에는 기계 밖의 경쟁력이 더 중요해진다는 설명이다.
그가 꼽은 차별점은 글로벌 서비스 네트워크와 고객과의 신뢰다. 기술은 분석할 수 있고 제품은 분해해 따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수십 년간 고객의 고장 요청에 응답하고 단종된 장비까지 책임진 기록은 단기간에 흉내 내기 어렵다.
“비슷한 제품을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하는 후발 업체는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래도 국내외 고객이 우리를 다시 찾는 이유는 회사가 40년 가까이 같은 곳에서 사업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고객이 언제 전화를 걸어도 응답하고 10년 넘은 단종 제품의 수리를 요청해도 모터와 부품을 찾아 장비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신뢰가 추상적인 경영 구호로 들릴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러나 사업을 오래 이어갈수록 기술과 서비스, 재구매를 잇는 힘이 신뢰라는 사실을 절감한다고 했다.
“신뢰라는 말이 두루뭉술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업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보면 모든 답은 그 두 글자로 모인다. 고객은 가장 싼 제품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질 회사를 찾는다.”
선대가 쌓은 제조 경험 위에 해외 서비스망과 실용적 AI를 더하는 것이 윤 부사장이 그리는 2세 경영이다.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승계도 아니고 새로운 기술을 무작정 덧붙이는 혁신도 아니다. 바꿔야 할 것은 바꾸고 오래 지켜야 할 약속은 더 단단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좋은 제품을 만들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며 고객이 다시 찾을 이유를 남기는 일. 제품과 가격이 빠르게 평준화되는 시대에도 와이에이치비에코가 지키려는 경쟁력은 그 오래된 약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