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2세 경영인들은 지금도 창업주의 사업을 물려받아 각 분야에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2세 경영인들은 디지털 전환과 글로벌 시장 개척 등으로 단순한 기업승계를 넘어 기업 경쟁력의 고도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산업일보의 연중기획인 ‘2세 경영, 산업의 다음 30년’은 이러한 2세 경영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제조 기업들이 명문 기업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기계 전문 기업 세형아마존을 이끄는 김범주 대표다..
세형아마존의 뿌리는 농업 근대화가 한창이던 1980년대 김국환 창업주가 시작한 농기계 사업에 닿아 있다. 아들 김범주 대표는 2020년 2대 대표로 취임해 경영을 이어받았다.
전북 익산에 자리한 세형아마존은 트랙터의 동력인출장치(PTO)를 연결하지 않고 사용하는 친환경 경작기기를 주력으로 생산한다.세형아마존은 제품의 무게와 주행 속도, 날의 각도를 활용해 토양을 가는 디스크형·치즐형 경작기를 자체 개발했다. 최근에는 경작과 파종을 한 번에 수행하는 복합기 개발로 기술 영역을 넓히고 있다.
현재 법인은 2020년 12월 설립돼 이듬해 3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법인의 역사는 짧지만 기술과 사업의 뿌리는 김 대표의 부친이 1980년대부터 일군 농기계 사업에 닿아 있다.
소방관의 꿈에서 가업의 가능성으로
김범주 대표는 “처음부터 가업을 이어받을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사업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지켜봐 소방행정학과에 진학했다”며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아버지 일을 돕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 영업과 부품 조달, 설계 업무를 맡으면서 사업의 가능성을 직접 확인했다”고 돌아봤다
김 대표는 농업기계 연구소에서 축산용 베일러와 사일리지 제조기 설계, 시제품 제작을 맡았다. 그는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2015년 세형아마존에 합류했다”며 “시장성과 제품 경쟁력을 직접 확인한 뒤 경영을 맡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가업 승계를 오래 망설였지만 김 대표의 일상은 일찍부터 회사와 맞닿아 있었다. 학창 시절에도 수업이 끝나면 곧장 회사로 향해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김 대표는 “스스로 ‘이 일은 하지 않겠다’고 되뇌던 때가 있었다”며 “오히려 친구들은 내가 결국 아버지의 일을 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돌이켜보면 친구들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셈”이라고 웃었다.
그는 “2세 경영자는 가업을 적극적으로 잇는 쪽과 애써 거리를 두는 쪽으로 나뉘는 것 같다”면서도 “내가 회사로 돌아온 이유는 의무감이 아니라 아이템에서 발견한 사업성이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부친에게서 배우고 이어가고 싶은 자질은 기술을 알아보는 안목과 끈기, 책임감이다.
김 대표는 “아버지는 원형 베일러와 줄 파종기처럼 당시 국내에 낯설었던 농기계를 일찍 도입했다”며 “처음에는 외면받던 기술이 시간이 흐른 뒤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 모습을 여러 차례 지켜봤다”고 말했다.
김국환 창업주는 지금도 기술고문으로 회사에 남아 신제품 발굴과 초기 시제품 개발을 돕는다. 경영의 전면에서는 물러났지만 기술 개발 현장에서는 아들과 여전히 호흡을 맞추고 있다.
“PTO 없이 간다”, 자체 기술로 다시 그리는 시장
김 대표가 경영을 맡은 뒤 내린 핵심 판단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로터베이터와 수입 농기계 유통에 머무르지 않고 PTO 연결이 필요 없는 디스크형·치즐형 경작기를 자체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세형아마존은 쟁기와 로터베이터가 주류였던 시장에서 벗어나 동력인출장치(PTO)를 연결하지 않는 경작 방식에 주목했다. 김 대표는 “유통업만 이어갔다면 평범한 농기계 판매회사에 머물렀을 것”이라며 “자체 기술을 확보하면서 파종 시스템으로 사업을 확장할 기반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판단은 공장 매입이었다. 김 대표는 “주변에서는 임대를 권했지만 적절한 임대 공간을 찾기 어려웠고 장기적으로는 매입이 더 경제적이라고 봤다”며 “공장을 확보한 덕분에 제품 개발과 생산을 함께 진행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한 배경으로 구성원 대부분이 비슷한 연령대라는 점을 꼽았다.
그는 “구성원들의 연령대가 비슷해 의견을 유연하게 조율하고 위계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롭게 논의한다”며 “초기에는 내가 직접 방향을 정했다면 지금은 실무를 담당자들에게 맡기고 새로운 과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현재의 수평적 조직 문화가 회사의 성장 단계에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사내 교육과 세미나를 꾸준히 열고 업무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혹독한 한국 시장에서 인정받은 기술력, 세계 시장을 정조준하다
세형아마존은 미국과 호주, 중앙아시아를 우선 진출 시장으로 검토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현지 업체들의 유통 기반이 탄탄해 초기 진입 부담이 크다고 판단했다.
“김 대표는 “현재 태국의 한 농업 솔루션 업체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며 “과거 소속 조합이 필리핀에서 추진한 사례처럼 정부나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협력 사업을 통한 진출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사업은 상호 신뢰가 전제돼야 하는 만큼 논의를 신중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는 현지 법인 설립 절차를 밟고 있다. 호주 진출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생산능력 확보를 선행 과제로 두고 있다. 두 시장에는 성능 검증용 샘플을 보낼 계획이다.
김 대표가 해외 경쟁력을 자신하는 근거는 자체 기술과 까다로운 국내 농작업 환경에서 축적한 제품 검증 경험이다.
김 대표는 “국내 농지는 점토와 돌이 많고 비가 내린 뒤 쉽게 굳는 곳이 적지 않아 작업 조건이 까다롭다”며 “볏짚이 많은 논에서도 성능을 견딘 제품이라면 상대적으로 작업 부담이 낮은 해외 농지에서도 경쟁력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 농기계 업체가 까다로운 작업 조건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에서 제품 시험을 진행하는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기존 PTO 구동형 장비 중심의 시장이 새로운 경작 방식으로 전환하는 시점”이라며 “자체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과 생산을 함께 하고 있어 시장을 넓힐 기회가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김 대표는 세형아마존의 기술 철학을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용하는 사람에게 친화적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농기계 산업에 분명한 발자취를 남기는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농업 인구 감소 속에서도 밭농사 기계화 시장에는 성장 여력이 남아 있다고 봤다. 그는 “벼농사의 기계화는 높은 수준에 이르렀지만 밭농사는 아직 기계가 대신하지 못하는 작업이 많다”며 “개별 제품의 성패를 장담할 수는 없어도 산업 전체로 보면 개발할 기술과 개척할 시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