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미국 제조업계가 만성적인 인력난을 해소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을 결합한 스마트공장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던 기존 산업용 로봇을 넘어 작업 환경을 스스로 인식하고 대응하는 AI 로봇의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적용 분야도 품질 검사와 위험 설비 점검 등 제조 현장 전반으로 넓어지는 추세다.
인력난 돌파구 된 스마트제조…협동로봇 주문 55.6% 급증
미국 제조혁신 네트워크 산하 ARM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미국 제조 현장에는 약 50만 개의 일자리가 비어 있다. 제조업 근로자의 평균 연령은 55세에 이른다. 숙련 기술자의 은퇴로 생긴 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자동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 조건이 됐다. 딜로이트가 미국 제조업 경영진 6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예산 가운데 20% 이상을 스마트제조 분야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동화 기술의 적용 범위도 단순 조립 공정에서 제조 현장 전반으로 확대됐다. 미국 제조리더십위원회(Manufacturing Leadership Council·MLC) 조사에 따르면 미국 제조기업의 76%가 비전 시스템을 공정에 활용하고 있다. 머신러닝을 도입한 기업도 66%에 달했다.
특히 고온과 고압 등 작업 위험도가 높은 공정에서 AI 로봇 활용이 두드러진다.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ST엔지니어링 MRAS 항공부품 공장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을 투입했다. 스팟은 고압 설비인 오토클레이브와 주요 생산시설을 자율 점검한다.
작업자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협동로봇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 자동화산업협회(Association for Advancing Automation·A3)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북미 지역 협동로봇 주문량은 1천637대로 전년 동기보다 55.6% 증가했다. 전체 로봇 주문량의 18.1%를 차지하는 규모다.
자동차 완성차 업계의 주문은 감소했지만 비자동차 산업의 수요가 이를 메웠다. 생명과학·제약 분야의 로봇 주문은 54.1% 늘었다. 반도체·전자 분야는 31.7% 증가했고 식품·소비재 분야도 16% 늘었다.
노후 설비 호환성이 주요 과제…“현지 SI 업체와 통합 서비스 제공해야”
스마트공장 투자가 늘고 있지만 미국 중소 제조기업의 자동화 수준은 여전히 낮다. 브루킹스연구소가 ARM 인스티튜트 관계자와 진행한 대담에 따르면 미국 중소 제조기업의 로봇 활용률은 약 8%에 머물러 있다. 공정 진단 역량이 부족한 데다 초기 투자비와 자동화 설비를 운영할 전문 인력 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특히 노후 설비와 신규 소프트웨어를 연동하는 문제가 주요 장애물로 꼽힌다. MLC 조사에서 장비 및 데이터 호환 문제를 스마트공장 전환의 장애 요인으로 꼽은 기업 비중은 지난해 22%에서 올해 37%로 늘었다.
김준희 코트라 미국 워싱턴DC무역관은 현지 업계 전문가의 평가를 인용해 스마트공장 전환의 성패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통합 역량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완전한 무인공장 구현보다, 노후 설비와 AI·로봇을 단계적으로 연결하고 현장에 맞게 최적화하는 역량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김 무역관은 미국 제조업의 스마트공장 전환이 한국 기업에 새로운 시장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용 로봇뿐 아니라 머신비전과 센서, 제어장치, 엣지 AI, 로봇 운영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 기회가 커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다만 김 무역관은 미국 시장에 안착하려면 현지 제조 환경에 맞춘 진출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무역관은 ‘미국 시장에서는 제품의 가격과 성능 외에도 기존 설비와의 호환성, 쉬운 설치와 조작, 현지 교육·유지보수 능력이 중요한 경쟁 요인’라며 ‘특히 자동화 경험이 부족한 현지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시스템 통합(SI) 업체와 협력해 공정 진단부터 설치와 사후관리까지 함께 제공하는 전략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