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제조업의 스마트공장 논의가 ‘불 꺼진 공장’으로 불리는 다크팩토리를 넘어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 SDF로 옮겨가고 있다. 핵심은 로봇을 몇 대 더 들이는 일이 아니었다. 1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산업AX 코리아 2026’에 참석한 제조 IT 기업들은 공장 설비와 업무 시스템이 같은 데이터를 읽고 움직이는 기반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터 표준화와 연동 체계 없이 추진하는 자율 제조는 현장 충돌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시스템 간 운영 맥락을 촘촘히 연결하고 현장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제하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자율 제조는 구현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코오롱베니트 정상섭 DX본부장은 기술 도입 자체에만 치중하는 현장의 인식을 짚었다. 정 본부장은 “현장에서는 여전히 기반이 되는 데이터의 가치는 모른 채 무작정 AI만 도입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사람의 관리를 전제로 구축된 기존 운영 시스템에 AI와 로봇을 무리하게 연동할 경우 전체 맥락을 잃고 시스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데이터 수집부터 판단, 실행, 학습이 끊김 없이 순환하는 통합 인프라 구축을 제안했다. 그는 “전사 일괄 적용 방식 대신 ‘어떤 운영 문제를 자율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명확한 시나리오에 기반한 ‘자율 운영 셀(Cell)’ 단위부터 단계적 접근을 밟아나가는 것이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이라고 권장했다.
LS일렉트릭 김용민 매니저는 사물인터넷(IoT) 환경을 구축할 때 단순 모니터링 수준에 그치지 않고 AI가 설비를 역으로 제어할 수 있는 통신 표준 체계를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대한 현장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에지 컴퓨팅 전처리를 도입하고, 다양한 솔루션의 데이터를 융합하는 빅데이터 플랫폼이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소프트웨어로 공장을 통제하는 SDF 비전을 구체화하며, 신규 설비 도입 시방서 단계부터 국제 표준 프로토콜인 OPC UA 기반의 데이터 제공을 의무화할 것을 제시했다. 또 실제 설비 입고 전 가상 공간의 에뮬레이터로 제어 로직을 미리 검증하는 가상 시운전 방식을 도입해 오류와 중복 투자 비용을 줄이는 방안도 소개했다.
한국IBM은 단순 분석을 넘어 기계가 물리적 행동을 직접 수행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의 데이터 무결성을 화두로 던졌다. 한국IBM 김용덕 실장은 “피지컬 AI 환경에서는 실시간 현장 데이터에 품질, 거버넌스, 계보(Lineage)가 엄격하게 결합된 ‘AI 레디 데이터(AI Ready Data)’가 확보돼야만 기계 오작동으로 인한 안전사고나 품질 불량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한국IBM은 전용 통합 플랫폼을 통해 메타 데이터 관리와 품질 검증 작업을 자동화하는 방향을 공유했다. 김 실장은 “실무자의 수작업 부담을 50~80%가량 줄여주며, AI가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율적인 추론과 의사결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인프라 고도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업계가 그리는 차세대 스마트공장은 로봇이 빼곡히 들어찬 무인 작업장에 그치지 않는다. 설비와 소프트웨어가 같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고, 공정 변화에 맞춰 제어 방식까지 바꾸는 공장에 가깝다. 이날 발표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도 AI 모델의 성능보다 데이터 기반이었다. 자율 제조의 출발점은 화려한 로봇팔이 아니라 현장 데이터를 믿을 수 있게 만드는 일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