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시선이 지난 1월 5일 CES 2026에서 공개된 엔비디아의 차세대 자율주행 파운데이션 모델인 ‘알파마요(Alphamayo)’에 쏠리고 있다. 알파마요는 생성형 AI 기술을 접목해 도로 위 상황을 스스로 추론하는 ‘거대 주행 모델(LDM)’로, 완전 자율주행을 구현할 핵심 동력으로 꼽힌다.
하지만 기술적 진보 이면에는 하드웨어 공급권을 장악하려는 엔비디아의 정교한 ‘플랫폼 록인’ 전략이 숨어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레벨 4를 향한 추론형 자율주행, 알파마요의 설계 철학
조건부로 인간의 개입 없이 주행 가능한 ‘레벨 4’ 자율주행을 목표로 하는 알파마요는 ‘추론(reasoning)’ 능력과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를 핵심으로 내세웠다.
알파마요는 단순히 카메라, 라이다 등 센서 수집 데이터를 처리하는 수준을 넘어 이를 언어적 개념과 논리로 구조화해 판단 근거를 생성한다. 또 주행 행동으로 연결하는 비전·언어·행동(VLA) 모델을 기반으로 설계돼 복잡한 교차로나 비정형적 상황에서도 학습 데이터에 직접 포함되지 않은 조건을 스스로 추론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알파마요는 설명 가능한 AI 기능을 통해 자동차가 특정 판단을 내린 이유를 인간이 이해 가능한 언어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엔비디아는 기존의 조향·가속·제동 제어에 그치지 않고, “어떤 행동을 선택했는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그리고 “그 판단에 따른 결과가 무엇인지”를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사고 발생 시 원인 분석과 책임 소재를 규명할 때 기존 시스템의 한계를 해소하고 자율주행 기술의 사회적 수용성과 법적 책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오픈소스 ‘알파마요’… 사실상 하드웨어 종속 전략일까
엔비디아는 이같은 알파마요의 핵심 로직을 ‘오픈 소스’ 형태로 외부에 공개하는 파격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겉으로 보기엔 기술 장벽을 낮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개발자들이 엔비디아의 개발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미끼로 작용할 수 있다.
도로 위 모든 상황을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이 거대한 알고리즘을 지연 없이 구동하기 위해서는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인 ‘블랙웰(Blackwell)’기반의 ‘드라이브 AGX Thor’ 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엔비디아가 공식적으로 하드웨어 구매를 강제하지는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소프트웨어를 쓰기 위해 특정 하드웨어를 선택해야만 하는 구조적 종속의 발생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정보 플랫폼 인베스팅닷컴(Investing.com)은 엔비디아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거부할 수 없는 생태계 고착화(Entrenchment)’라고 정의했다.
‘실리주의’ 선택한 현대차, 엔비디아와의 거리 조절
현대차그룹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엔비디아라는 강력한 지렛대를 활용하면서도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025년 10월 30일, 자율주행 및 로보틱스 개발을 위해 블랙웰 GPU 5만 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하며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특히 지난 1월 6일 정의선 회장과 젠슨 황 CEO의 단독 회동 이후, 현대차의 알파마요 도입 검토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이달 13일 임명된 박민우 첨단차플랫폼(AVP) 본부장 겸 42dot(포티투닷) 대표는 이러한 ‘실리 중심의 기술 자립’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엔비디아 부사장 출신인 박 사장은 지난 21일 사내 메시지를 통해 조직 간 칸막이를 없애는 ‘융합 원팀’을 강조하며, 빅테크식의 빠른 의사결정 체계를 현대차에 이식하기 시작했다.
코다(CODA) 아키텍처, 하드웨어 주권 지킬 방어선
박 사장의 핵심 임무 중 하나는 현대차의 독자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아키텍처인 ‘코다(CODA)’의 기술적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코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리하는 존(Zone) 아키텍처를 지향한다. 업계에서는 박 사장이 엔비디아와 테슬라에서 쌓은 양산 경험을 바탕으로, 하드웨어 인터페이스 표준화를 통해 특정 공급사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개선 작업을 주도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의 엔진을 수용하되 이를 담는 ‘그릇’인 아키텍처 주권만큼은 현대차가 가져가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전략적 선명함은 시장의 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가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의 선두 주자로 주목받으며 주가가 사상 처음으로 40만 원대를 돌파하고 시가총액 80조 원을 넘어선 것은, 박 사장 체제의 실리적 기술 로드맵에 대한 신뢰가 반영된 결과라는 평이다.
결국 추론형 자율주행 시대로의 전환에서 승자는 거대 엔진을 빌려 쓰더라도, 그 엔진을 제어할 ‘지도’를 직접 그리는 자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