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제조업의 인공지능 전환(AX)이 확산하고 있지만 대기업과 협력사 간 도입 격차는 여전히 크다. 대기업이 AI 기반 생산·수요예측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사이 일부 중소 협력사 현장에서는 엑셀과 수기 장부를 함께 사용하는 사례도 남아 있다. 공급망 전체의 데이터 연계가 중요해지면서 협력사의 AX 전환도 제조업 경쟁력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제조기업 대다수가 원청과 하청 간 인프라 격차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조사에 따르면 매출 상위 800대 제조기업의 91.5%가 ‘공급망 전반의 AX가 필수’라고 답했다. 반면 협력사 AX 지원이 정착된 곳은 5.5%에 불과하며, 39.5%는 시범사업 추진 단계에 그쳐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큰 실정이다.
공급망 AX 확산을 가로막는 핵심 장벽은 예산과 전문 인력의 부재였다. 기업들은 협력사 AX를 가로막는 핵심 요인으로 ‘협력사의 디지털 인프라 및 AI 역량 부족(43.4%)’과 ‘비용 부담(17.5%)’을 지목했다.
팀스파르타가 발간한 ‘2026 기업 AX 벤치마크 리포트’에 따르면, IT 대기업의 AX 성숙도는 68점인 반면 제조·생산 중소기업은 28점에 불과했다. 기업 규모별 AI 도입 실행률 역시 대기업(76%)과 중소기업(46%) 간의 격차가 극명했다.
현장 실무진들의 체감도도 저조하다. 경기도 소재의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AI가 워낙 화두이다 보니 회사에서도 활용을 권장하지만 그뿐”이라며 “전문 인력도 없고 제대로 된 실무 교육이나 가이드라인도 전무해 현장에서는 여전히 수기 장부와 엑셀을 혼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팀스파르타 조사에서도 AX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직원 간 AI 활용 수준 차이(55%)’가 꼽혔으며, AI 교육을 시행한 기업의 82%가 실무 적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한 ‘AI 서밋 서울 앤 엑스포 2026’ 현장에서도 이 같은 장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시장에는 고성능 기업용 솔루션이 다수 출품됐으나, 영세한 협력사가 대기업 표준에 맞춰 독자 인프라를 구축하기에는 장벽이 높았다.
현장에서 만난 한 글로벌 IT 기업 관계자는 “본격적인 AI 환경을 구축하고 원본 데이터를 보관하려면 수입 자동차 한 대 값에 달하는 고성능 GPU와 페타(Peta)급 스토리지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막대한 자본과 IT 전담 인력이 없는 소규모 협력사에게는 자체 인프라 구축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솔루션 업계는 이러한 협력사의 비용 및 인력 부담을 덜기 위해 클라우드 자동화와 비정형 데이터 정제 기술 등으로 우회로를 제시하고 있다.
클라우드 유지보수를 AI로 대체하는 노스웨이의 자율형 플랫폼은 대규모 인프라는 물론, IT 전담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도 대안이 된다. 이상원 노스웨이 대표는 “클라우드 엔지니어 한 명을 고용할 연간 비용이면 플랫폼 도입이 가능하다”며 “AI가 10명 몫의 유지보수 작업을 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전문가도 AI를 통해 자연어로 클라우드를 다루는 구조다 보니, 부스를 방문한 개발자들도 ‘우리가 직접 운영해도 되겠다’고 호응했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내부 폐쇄망에서 구동되는 로컬 LLM 옵션은 협력사의 영업비밀 유출 우려와 AI 사용료 부담을 해소해준다.
사이오닉에이아이(Sionic AI)는 엔터프라이즈 AI 풀스택 ‘STORM’을 통해 기업 데이터의 지식화와 에이전트 구축 과정을 선보였다. 데이터 연동을 막는 고질적 원인인 ‘비정형 데이터’의 규격화에 집중해 서식이 제각각인 엑셀 파일, 스캔본, 수기 일지 등을 AI가 읽을 수 있도록 변환해준다. 코딩 지식이 없는 실무자도 자연어 명령만으로 업무용 AI 에이전트를 설계할 수 있도록 노코드 환경을 갖췄다. 또 엔터프라이즈 시장의 엄격한 보안 요구에 맞춰 온프레미스와 프라이빗 클라우드 배포를 모두 지원한다.
원하청 간의 데이터 연계가 끊기면 공급망 전체의 생산성 제고는 요원하다. 한경협의 ‘협력사 AX 확산 현황 및 애로요인 조사’ 응답 기업들은 향후 협력사 AX를 위해 본사가 담당할 수 있는 현실적 역할로 ‘데이터 연계 및 표준화(40.1%)’를 1순위로 꼽았다. 현장에 다양한 기술적 대안이 등장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공급망 AX 안착을 위해서는 한경협 측 제언처럼 ‘협력사 AI 도입 비용 지원(43.7%)’과 ‘업종별 표준모델 개발(25.5%)’ 등 실질적인 정책 뒷받침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