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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뿌리를 묻다]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써간 38년 역사
김진성 기자|weekendk@kid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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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뿌리를 묻다]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써간 38년 역사

그린맥스 강대식 대표 “국산화·농기계 시장 진출 이어 로보틱스 시장까지 끊임없는 도전 이어가”

기사입력 2026-07-13 14: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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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일보]
한국 제조업의 뿌리는 화려한 성과보다 오래 버틴 현장에 있다. 자본도 인프라도 부족했던 시절, 1세대 창업 경영인들은 기계를 들여오고 사람을 키우며 시장을 열었다.

산업일보 연중기획 ‘산업의 뿌리를 묻다’는 창업주의 증언을 통해 한국 제조업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는 구술 아카이브다.

이번 편의 주인공은 농기계 분야에서 로봇틱스 분야에 이르기까지 40년이 가까운 세월을 제조 현장에 바친 (주)그린맥스 강대식 대표다.


[산업의 뿌리를 묻다]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써간 38년 역사
그린맥스 강대식 대표


인천 남동공단 한편에 자리한 그린맥스는 자동차부품 수출로 출발해 농기계 국산화를 거쳐 지금은 농업용 로봇 개발에 도전하고 있는 회사다. 그 중심에는 38년 가까이 회사를 이끌어온 강대식 대표가 있다.

강 대표는 1984년 기아자동차에 입사해 4년 6개월을 근무했다. 당시 대기업의 노동 강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회사 인근에 숙소를 마련해두고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새벽같이 출근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주말도 없는 생활이 계속됐다. 회의에 쫓기듯 뛰어다니던 어느 날, 강 대표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세차장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별다른 대책 없이 회사를 나왔다. 결혼한 지 1년 남짓, 스물아홉 되던 해였다.

퇴직금과 우리사주를 정리해 마련한 창업 밑천은 2,600만 원. 여기서 봉고차 한 대를 사고 나니 남은 돈은 천만 원 남짓이었다. 자동차 정비 경력을 살려 처음 시작한 일은 무역이었다.

“국내 자동차의 AS 부품이 해외 시장에는 공급되지 못하는 공백이 보였다”고 말한 강 대표는 “국산 트럭들이 일본 차량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활용해 부품 호환성을 파악하고 약 20개국에 수출하는 것은 물론 대만, 필리핀 등지의 거래선을 뚫어 국내에서는 단종된 부품까지 공급하며 사업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기간 동안 강 대표는 한 해의 3개월 가량을 해외에 머물 정도로 무역업에 매달렸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문래동에 대창자동차부품주식회사를 설립한 뒤 1990년 법인으로 전환하며 대창테크를 출범시켰다.

첫 번째 승부수였던 국산화, 첫 디딤돌이 되다

강 대표가 본격적으로 제조업에 몸담게 된 계기는 동력전달장치(PTO, Power Take-Off) 국산화였다. 당시 국내에서 소방차, 견인차, 주유소 차량 등 특정 목적을 가진 특장차는 흔치 않았고, 이런 차량에 필요한 유압 동력을 전달하는 PTO 장치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강 대표는 “정부의 국산화 지원 과제를 통해 6천만 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받아서 국산화에 성공했고, 이어 벤처캐피탈로부터 1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말한 뒤 “당시 회사 매출이 5억 4천만 원 규모였던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투자였는데 이렇게 국산화한 PTO는 수산중공업, 광림특장, 기아전기 등 국내 유수의 특장차 업체에 납품되며 회사 성장의 발판이 됐다”고 회고했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서 강 대표는 1993년 지금의 인천 공장 부지를 마련했다. 당시만 해도 이 일대는 허허벌판이었고, 땅값은 2억 3천만 원이었다. 특히, 지금과 달리 계약금만 있으면 은행이 잔금을 대출해주는 제도가 없던 시절이라,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아 먼저 등기부터 마친 뒤 다시 대출을 받아 갚아나가야 했다. 공장을 짓고 특장차 부품 사업을 이어가던 강 대표는 동시에 농기계 업체들의 기어 가공 등을 수주하며 농기계 산업의 실태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국내 농기계 산업이 다른 제조업에 비해 국산화율이 현저히 낮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한 강 대표는 “유동기와 로터베이터 같은 농기계를 국산화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 무렵 업계에 '녹색·친환경'을 뜻하는 단어가 유행하기도 하면서, 회사명도 지금의 ‘그린맥스’로 바꿨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1990년대 초 독일 출장에서 독일의 기술력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 회사의 핵심 설비 일부를 독일산으로 바꿨다”며 “당시 중고로 들여온 50년대 생산된 독일제 기계는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가동되고 있으며, 정밀도 면에서는 오히려 최근 장비보다 낫다”고 말했다.

이때 세워진 “제품은 결국 정밀하게 잘 만들어야 한다”는 강 대표의 원칙은 지금까지 경영철학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위기의 연속,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산업의 뿌리를 묻다]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써간 38년 역사
그린맥스에서 개발·생산하는 로터베이터의 모습


강 대표가 꼽는 첫 번째 전환점이 창업이었다면, 두 번째는 특장차 부품 중심이던 사업을 농기계로 확장한 결정이다. 그러나 회사의 역사는 순탄치 않았다. 외환위기 당시 특장차 부품 사업은 큰 타격을 입어 관련 사업을 정리해야 했고, 이때 입은 손실은 약 10억 원에 달했다.

대신 정부의 농기계 구매 지원 정책 덕분에 오히려 다른 업종보다 바빴던 시기를 보냈다는 것이 강 대표의 기억이다. 당시 인근 업체들이 임금을 20~30%씩 삭감할 때도 그린맥스는 임금을 줄이지 않고 버텼다고 한다.

2003년에는 협력업체와 함께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40만 달러, 원화로 약 40억 원을 투자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큰 환차손을 입었고, 이는 이후 회사가 어려움을 겪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결국 2014년 중국 사업을 철수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익산 공장을 매각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공장 부지에서는 아들이 2018년 로봇 회사(로봇팜)를 창업했고, 회사는 2019년 이 공간으로 다시 들어가게 됐다.

이듬해인 2020년에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쳤다. 강 대표는 “농기계 업계는 통상 설 명절 직후 성수기가 시작되는데, 방역 조치로 정비 기사들의 이동이 막히면서 직격탄을 맞았다”며 “나도 아프리카 출장길에 현지 국경 폐쇄로 대금 송금이 막히는 상황을 직접 겪으며 팬데믹의 심각성을 체감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최대 70여 명에 달했던 직원 수는 이후 여러 차례의 어려움을 거치며 현재 30여 명 수준으로 줄었다. 이후에도 국제 정세 변화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환율 상승,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인한 특장차 수출 중단 등 대외 변수가 잇따르며 회사는 크고 작은 파고를 넘어왔다.

“원자재 가격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랐지만 이를 기업에 전가하기는 어렵다”고 말한 강 대표는 "회사가 몸집을 줄이고 나니 오히려 지금이 자금 흐름 면에서는 낫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로보틱스와 자율주행, 미래를 내다본 새로운 도전

[산업의 뿌리를 묻다]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써간 38년 역사
그린맥스 강대식 대표


강 대표가 세 번째 결정으로 꼽는 것은 로보틱스로의 사업 전환이다. 그가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의 잠재력에 확신을 갖게 된 계기는 10년 전 있었던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 간의 세기의 바둑 대국이었다. 이후 그는 인간의 노동을 로봇이 대체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고 판단하고, 농기계 산업에도 이 흐름이 적용될 것이라 확신했다.

2016년부터 시작한 자율주행·로봇 기술 개발은 아직 뚜렷한 상업적 성과 단계는 아니다. “초기에는 사람을 인식해 뒤따라오는 수준의 리모컨 조작형 로봇도 '로봇'으로 인정받았었다”고 말한 강 대표는 “최근에는 자율주행을 넘어 스스로 학습하고 능동적으로 판단해 움직이는 이른바 '피지컬 AI' 단계로 기술의 눈높이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 강 대표는 로봇 도입을 무조건 낙관하지는 않는다. 그는 사과 수확 로봇을 예로 들며 “로봇이 사람보다 빨리 따는지 늦게 따는지만 묻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며 “한 사람이 하루 50kg의 사과를 수확하던 것이 지금은 체력 저하로 20~25kg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 그리고 외국인 근로자를 구하지 못해 겪는 스트레스까지 포함해 종합적으로 경제성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또한 그는 농업용 로봇을 상용화하려 해도 관련 검사 규정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아 판매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며, 산업 발전 속도에 비해 제도 정비가 더디다는 점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런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는 농업의 로봇화 흐름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고 확신하며, 아들이 운영하는 로봇팜과의 협업을 통해 하드웨어 중심의 농기계 사업이 갖는 한계를 로보틱스로 돌파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남는다”

[산업의 뿌리를 묻다]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써간 38년 역사
그린맥스 익산공장 전경 (사진제공 : 그린맥스)


경영자로서 강 대표가 가장 강조하는 원칙은 '일은 머리나 실력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는 직원을 '손님'과 '식구'로 구분한다. 손님은 언제든 왔다가 떠날 수 있는 존재지만, 식구는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함께 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직원에게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지 않고, 나이와 직급에 관계없이 서로 존댓말을 쓰도록 하는 것을 조직 운영의 원칙으로 삼아왔다고 말한다.

이런 철학은 여러 사례로 이어진다. 경증 장애가 있어 처음에는 여러 부서에서 꺼렸던 한 직원은 ‘동네 불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월급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강 대표의 격려에 힘입어 매일 새벽 자전거로 출근해 공장 불을 밝혀왔고, 3년이 지난 지금은 반복 업무에서만큼은 누구보다 확실한 역할을 해내는 직원이 됐다고 한다.

남편을 갑작스레 잃고 세 자녀를 홀로 키우는 한 직원에게는 아이들이 클 때까지 회사가 함께 버텨주자는 마음으로 병원비를 지원하는 등 필요한 순간마다 도움을 이어가고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한 회사에서 함께 일하다 자녀끼리 부부의 연을 맺은 사례도 강 대표에게는 자랑스러운 기억이다.

강 대표는 직원의 역량을 키우는 데도 적극적이다. 그는 현장 경험만 있던 자재 담당 직원에게 신제품 개발 업무를 맡기고, 필요하다면 캐드 학원 수강비까지 지원하며 스스로 도면을 익히도록 독려했다.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직접 만들어 낸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해당 직원이 회사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 강 대표는 “연구소만 도면을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라, 현장 감각을 가진 직원들도 얼마든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내가 회사를 세웠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고 표현하면서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야 험난한 시기도 함께 견뎌낼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안녕하세요~산업1부 김진성 기자입니다. 스마트공장을 포함한 우리나라 제조업 혁신 3.0을 관심깊게 살펴보고 있으며, 그 외 각종 기계분야와 전시회 산업 등에도 한 번씩 곁눈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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