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의 주류로 거듭나며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지만, 정작 한국 콘텐츠 산업의 노동 환경은 법적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월 발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 콘텐츠 산업의 매출액이 157조 4천21억 원을 돌파했고 수출액은 140억 7천543만 달러를 넘어섰다. 무역 수지는 131억 5천987만 달러 흑자로, 역대 최고 호황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적표의 이면에는 ‘위장 하도급 고착화’를 비롯한 콘텐츠 제작 현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가려져 있다.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진보당 손솔 의원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예술인 안전을 지키는 사람들·문화예술노동연대·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콘텐츠산업노동자 권리보장 3법’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3법은 ▲문화산업진흥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콘텐츠산업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자본 투자·기업 육성을 비롯한 산업 경제적 진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행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에 국가·지자체가 문화산업 노동자에게 적정한 보수와 안전한 노동 환경을 마련하도록 하고, 정부·문화산업 사업자·노동자 대표가 대등하게 참여하는 노사정 협의체 설치 근거를 신설했다.
표준계약서 사용을 권고하고 있는 ‘콘텐츠산업 진흥법’에서는 표준계약서 사용을 의무화하고 임금·근로시간·그 밖의 조건을 명시하도록 했다. 콘텐츠 사업자에게 안전보건 조치 의무도 부과했고, 임금을 체불하거나 표준계약서를 사용하지 않는 사업자에게는 정부의 재정 지원 사업 참여를 배제하는 제재도 포함됐다.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에 관한 법률’은 근로자를 예술인으로 포섭하면서, 제작사들이 근로기준법을 우회해 위탁 용역 계약을 맺도록 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이에 개정안에서는 명칭과 형식에 관계없이 근로계약이 아닌 계약을 체결하는 행위를 불공정 행위로 명시했다. 더불어, 실효성 있는 권리 구제를 위해 예술인 보호관을 보조하는 담당관을 확보하도록 했다.
손 의원은 “현장 스태프들은 근로계약이 아닌 프리랜서 계약을 강요받으며, 표준계약서는 사용을 권장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고, 사용자들은 실질적 지휘·감독을 하면서도 근로기준법 상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라며 “콘텐츠 산업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지키고자 문화예술 노동단체들과 함께 콘텐츠 산업 노동자 권리 보장 3법을 발의한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노동단체 관계자들도 콘텐츠 산업의 외형적 성장 속에 소외된 현장의 그늘을 강하게 비판했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안병호 위원장은 2015년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영비법)’ 개정과 헌법재판소가 영화 현장의 노동자 역시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임을 합헌으로 판결했던 것을 언급하며 “문화 콘텐츠 산업 노동자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임금 체불 시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는 인식이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K-컬쳐 300조 시대라고 하지만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으며, 심지어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기까지 한다”라며 “산업의 성장을 기대한다면 노동자의 권리가 배제되어선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예술인 안전을 지키는 사람들의 공동대표인 목원대학교 박철웅 교수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리허설 도중 400kg의 무대 장치 추락 사고로 숨진 故 안영재 성악가의 사례를 전했다.
그는 “지자체 소유 극장이었음에도 신분이 문화예술 노동자가 아니라 ‘중소기업 사장(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산업재해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고, 거액의 치료비를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라며 “지금이라도 서울시 오페라단,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는 예술가의 책임을 지킬 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어 “이번 3법 개정안에는 예술인을 노동자로 규정해 달라는 요구를 담았다”라며 “예술인만의 특혜가 아니라, 잘못된 해석으로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최소한의 요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