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첨단 기술 인재 한 명을 유치하기 위해 국내 기업이 부처를 돌며 서류를 제출하는 사이, 중국 항저우는 클릭 한 번으로 비자부터 주거까지 해결하는 ‘통합 행정’으로 글로벌 두뇌를 선점하고 있다. 정부가 ‘K-CORE’, ‘톱티어’ 비자 확대로 문턱을 낮추고는 있지만, 부처 간 칸막이 행정인 ‘행정 사일로(Silo)’가 초래한 정책적 시차는 글로벌 인재 쟁탈전의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한다.
정부도 첨단산업의 ‘두뇌’를 겨냥한 재정적 유인책을 내놓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2026년 산업혁신인재성장지원(최고급 해외인재 유치) 사업’을 통해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에 나섰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로봇 등 8대 첨단분야의 박사급 또는 5년 이상 경력자를 타깃으로 한 이 사업은 과제당 30개월간 총 15억 원을 지원한다. 특히 정부지원금의 60% 이상인 연간 3억 6천만 원 이상을 해외 인재 1인의 인건비로 쓰도록 강제할 만큼 처우 수준을 높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브레인 풀 플러스(Brain Pool+)’를 통해 연 30억 원 규모의 묶음 예산을 지원하며 석학급 연구팀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탄’ 지원에도 불구하고 행정 거버넌스의 낙후성이 정책 효과를 반감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영준 가천대 교수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노동력 부족을 메우는 단순 ‘인력(Labor)’ 정책과 국가 전략 자산인 ‘인재(Talent)’ 정책을 혼동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법무부의 이민 전략이 인구 위기 대응이라는 방어적 관점에 매몰된 사이, 산업 현장의 공격적 인재 유치 전략은 행정 절차에 부딪혀 병목 현상을 낳고 있다.
가장 큰 격차는 행정 효율성에서 발생한다. 중국은 이미 인재 유치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업의 행정 부담을 최소화하는 데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중국 항저우시는 2023년 9월 위항구에서 시작된 외국인 인재 전용 ‘원스톱(一件事)’ 통합 플랫폼을 2024년 7월 시 전역으로 확대했다.
과거 기업 관계자가 인사, 출입국, 세무, 사회보험, 의료, 주택, 교육 등 7개 부처를 일일이 방문해야 했던 번거로움을 온라인 자료 일괄 제출과 부처 간 데이터 연동을 통한 ‘통합 승인’으로 단일화한 것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각개전투’식 행정에 머물러 있다. 국내 기업이 해외 인재를 영입하려면 범부처통합연구지원시스템(IRIS)에 접속해 연구계획서를 접수하고, 국가연구자정보시스템(NRI)에 인재 정보를 등록하며, 비자 발급을 위해 법무부 시스템을 다시 거쳐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글로벌 스타트업 센터(GSC)’를 통해 일부 통합 처리를 시도 중이나, 이는 스타트업 영역에 국한된 실정이다.
산업계와 학계는 단순한 비자 완화를 넘어 ‘유입-정착-활용’을 포괄하는 범부처 통합 플랫폼 구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여 교수는 대통령 직속의 범부처 컨트롤타워 신설과 부처 간 기능을 통합 조정한 ‘실질적 권한 부여’를 역설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도 ‘주요국 AI 인재 양성 및 유치 정책’ 보고서를 통해 거버넌스 혁신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등 AI 선도국들은 이미 인재를 단순한 노동력이 아닌 국가의 ‘포괄적 국력’을 결정짓는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고 다각적·중첩적인 유치 전략을 구사 중이다.
영국은 AI 위원회를 중심으로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문 ‘AI 액션 플랜’을 통해 통합 정책을 실행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범캐나다 AI 전략’을 통해 연구 역량 강화와 인재의 정주 환경을 결합한 통합 생태계를 구축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정책이 여전히 개별 부처의 단기 공급형 사업에 치중돼 있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한다. 글로벌 인재는 비자 혜택보다 연구의 지속성과 혁신적인 연구 환경을 보고 이동하기 때문에, 비자(법무부), R&D(산업부·과기부), 고용 관리(고용부)가 하나로 맞물린 ‘정주형 혁신 허브’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결국 인재 유치전의 본질은 비자 발급이라는 ‘입구’ 경쟁을 넘어, 연구의 지속성과 행정의 예측 가능성이 보장되는 ‘생태계’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행정적 문턱을 낮추는 단기 처방을 넘어, 글로벌 두뇌들이 한국의 산업 현장에 연착륙해 장기적인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정교한 지원 체계 마련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