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국내 로봇 산업 매출 6조 원 시대가 열렸으나, 내막은 여전히 '수입 부품의 전시장'에 가깝다. 산업 전시회마다 K-로봇의 위상을 외치지만, 실제 로봇의 근육과 신경을 구성하는 것은 중국산 저가 부품과 일본산 정밀 부품이다. 특히 단가 경쟁력이 생존과 직결되는 중소 로봇사들에게 중국산 부품은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다.
6조 시장의 역설… ‘차이나 인사이드’에 갇힌 K-로봇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 2024년 국내 로봇산업 매출액은 6조 1천695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 6조 원 고지를 넘어섰다. 하지만 전체 사업체의 98.0%가 중소기업이고, 매출 10억 원 미만 영세 업체가 65.1%를 차지하는 기형적 생태계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수치로 드러난 핵심 부품의 외산 의존도는 뼈아프다. 2024년 로봇산업 총 수입액은 6천895억 원으로 전년 대비 5.1% 늘었으며, 이 중 일본산 비중이 42.7%로 압도적 1위다. 특히 제조업용 로봇 분야는 수입액의 56.2%가 일본에 쏠려 있어 핵심 구동부의 대일 의존도가 매우 높다.
중소 업체들의 수요에 맞춰 1천만 원 미만의 저가형 로봇을 제작·공급하는 A사 관계자는 하드웨어 부품과 제어 소프트웨어에 모두 중국산을 활용했다고 밝혔다. 로봇 산업에만 30년을 종사했다는 그는 “원가 차이가 워낙 커 국내 자체 공급망을 형성할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갔다”고 진단했다. 인건비 상승을 방어하기 위해 투자 회수 기간(ROI) 단축에 사활을 건 제조 현장의 절박함이 중국산 저가 부품의 시장 잠식을 가속하고 있다.
“10 개 중 3개가 불량”… ‘품질 신뢰성’이 만드는 역전의 기회
하지만 파격적인 단가 공세 이면에는 치명적인 품질 리스크가 숨어 있다. AI 휴머노이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자체 개발 중인 한 로봇 스타트업 B사의 관계자는 “중국산 모터는 10개를 구매하면 3개는 불량일 정도로 수율이 낮다”고 토로했다. 표기된 스펙과 실제 성능이 다른 경우도 빈번하며, 사후관리(AS)나 교환이 사실상 불가능해 대량 구매 후 불량품을 버려야 하는 소모적인 비효율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중국산의 품질 장벽은 역설적으로 국내 부품사들에게 ‘신뢰’라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단가 경쟁의 늪에서 벗어나 고품질 내재화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국내 로봇 산업을 주도하는 현대차그룹 역시 최근 부품 자립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기술 유출 방지와 대량 양산 체계 구축을 위해 '아틀라스'에 탑재되는 액추에이터와 그리퍼 등 핵심 부품 5종의 자체 양산을 타진하며 외산 의존도 낮추기에 나섰다.
정부 차원에서도 지난해 국내 1천여 개 주요 산학연이 참여한 초대형 협의체 ‘휴머노이드 M.AX 얼라이언스’를 출범시키며 2030년까지 핵심 부품 국산화 및 글로벌 상용화 최강국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쇼’가 아닌 ‘실전’… 피지컬 AI로 완성하는 mm의 정밀도
하드웨어 물량전의 열세는 고부가가치 영역인 ‘로봇 지능’ 시장에서 역전을 꾀한다. 중국산 휴머노이드가 무술이나 춤 등 화려한 '보여주기식 퍼포먼스'에 치중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실제 제조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초정밀 제어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대다수 로봇 기업들이 해외 부품을 엮어 파는 단순 ‘시스템 통합(SI)’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타개할 돌파구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의 아틀라스는 56개의 자유도와 촉각 센서를 통해 복잡한 '시퀀싱 작업'을 오차 없이 수행하며 실전형 로봇의 기준으로 기대받는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실제 자동차 생산 라인에 이를 투입해 제조 혁신을 가속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피지컬 AI(Physical AI)’ 분야를 전 세계가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초기 시장으로 평가한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에 따르면, 관련 시장 규모는 올해 약 80조 원(약 600억 달러) 수준에서 2040년 3조 2천억 달러(약 4천300조 원) 규모로 폭발적인 성장이 전망된다.
한국이 보유한 방대한 정밀 제조 데이터와 하드웨어의 물리적 오차를 소프트웨어가 실시간 보정하는 지능형 제어 기술은 중국과 차별화되는 강력한 승부수다. 단순히 하드웨어를 파는 시대를 넘어, mm 단위의 오차까지 제어하는 ‘지능형 모듈 통합 역량’이 K-로봇 산업의 핵심 생존 전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