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AI(인공지능)의 부정확한 법률 정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리걸테크(LegalTech) 규제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됐다. 검증되지 않은 범용 AI 의존도가 높아지고, 국내 민감 법률 데이터가 해외 서비스에 종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공지능협회 최이선 정책전문위원(변호사)은 9일 국회 의원회관 2세미나실에서 열린 ‘AI 시대 국민의 권리와 선택권 보장을 위한 리걸테크 정책 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서 리걸테크 정책 방향에 대해 짚었다.
그는 “한국의 법률서비스 무역수지는 심각한 적자를 기록 중”이라며 “2024년 기준 국내에서 해외 로펌에 지급된 법률서비스 비용이 3조 원을 넘어서면서 총 1조 6천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고, 적자 규모는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전했다.
더불어 “무역수지 적자의 근본적 원인은 리걸테크 산업의 체급차이에서 비롯된다”라고 지적했다.
최 정책전문위원이 인용한 트랙슨테크놀로지(Tracxn Technologies)의 조사에 따르면, 리걸테크 종주국인 미국의 투자 규모는 89억 달러(한화 약 12조 원)로 2위인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의 수치를 압도했다.
글로벌 시장의 성장세도 급증하는 모양새다. 최이선 정책전문위원은 “전 세계 법률 시장 내 생성형 AI 시장 규모는 2025년 기준 약 1억1천768만 달러로 추산되며, 2035년에는 16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라며 “매년 30%의 성장률로 고속성장하는 셈이다”이라고 동향을 살폈다.
그러면서 “리걸테크의 합법·불법을 두고 논쟁하는 사이 리걸테크 진흥을 위한 근거법안이 수년째 표류 중인 한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리걸테크 진흥의 필요성으로 ▲사법 접근성 향상 ▲국가 경쟁력 증진 ▲법조주권 보호 ▲국민의 선택권 보장 ▲법체계 고유성 수호 ▲법률 시장의 플랫폼 종속 방지 ▲사법시스템의 ‘블랙박스’화 방어 등을 꼽았다.
또한, 리걸테크 진흥을 위해 비변호사의 시장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진단했다. 변호사는 법률지식수준에 대해 국가의 검증을 받은 자격자일 뿐, ICT 기술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리걸테크 서비스 개발의 지식적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최 정책전문위원은 과거 한국의 24시간 무료 법률상담 AI, 일반 사용자용 법률상담 서비스, AI 상담 챗봇 서비스가 규제로 인해 중단됐던 사례를 제시하며 “변호사가 아닌 AI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지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리걸테크를 금지하면 국민들이 법률 영역에서 AI를 사용하지 않는가”라며 “AI는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거대한 AI의 파도를 손바닥으로 막으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소비자 보호의 본질은 기술적 접근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통제’가 아니라, 정확한 정보 제공을 통해 소비자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돕는 ‘조력’에 있다”라며 “현재의 규제 논의는 국민을 자율적 판단 능력이 결여된 미성숙한 객체로 간주해, 리걸테크 사용을 금지해 보호하겠다는 전근대적 시각에 머물러 있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최이선 정책전문위원은 “국민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혁신적인 법률 서비스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라며 “AI 생산물에 대한 고지 의무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리걸테크를 명시적으로 제도권에 편입해 최소한의 합법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고, 제도 운영과정에서 기술 성숙도와 시장 검증을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단계적인 규제 완화 및 거버넌스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주최하고 (사)한국인공지능협회가 주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