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술의 가치가 중요해지면서 기술유출 및 탈취 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최근 5년간 연평균 20건의 기술이 해외로 유출됐으며, 그 피해액은 25조 원에 달한다. 이러한 기술유출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전문 법원을 설치하고, 기술유출 관련 부처에 특별사법경찰을 도입해 정보기관과 협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윤해성 박사는 18일 국회에서 개최된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국가 핵심기술 보호 대책’ 토론회에서 ‘국가핵심기술 보호를 위한 특별사법경찰의 역할 제고’라는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그는 “기술유출·탈취 범죄는 국부를 해외로 유출하는 신안보 범죄”라고 규정하며 “정부는 증거개시제도 도입, 손해액 산정을 위한 표준 가이드라인 마련 등의 노력을 하고 있으나, ‘전문 법원 설치’, ‘손해액 산정’, ‘양형 기준 강화’, ‘특별사법경찰(특사경) 확대’ 등 제도적 개선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윤 박사는 “그동안 법원에서는 기술유출을 ‘화이트칼라 범죄’로 취급했으며, 초범이나 공탁 같은 경우 벌금 또는 집행 유예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기술 침해에 대한 전문성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산업 기술유출은 범죄를 포착하고 입증하는 과정이 매우 어려워, 최근 특사경 도입 필요성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윤해성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2018~2022년 5년간 산업기술 해외 유출 피해액을 25조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2024년 국가수사본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27건의 범죄가 검거됐고, 범죄수익 65억 원을 환수했다.
그는 “중소·영세기업의 경우 기술유출로 인해 존폐의 기로에 몰릴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라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는 ‘경제 스파이’ 행위를 엄벌하고 기술 유출 법제도적 방안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영업비밀보호법’, ‘경제스파이법’ 등 상무부와 법무부 주도로 전담 재판·수사 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연방법원 내에는 특허 전담 법관·기술전문위원 제도를 활용해서 전문성을 담보하고 있으며, 연방 검찰·FBI·법무부 산하 지식재산특별팀과 연계해 전담 재판부에 사건을 신속하게 배당하고 있다.
피해액, 시장 가치, 연구 비용, 기업 가치 변동을 비롯한 기술경제 가치 평가를 전문기관·전문가 증인 신문을 통해 주 재판부에서 독립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판결 시 피해액만큼 양형에 구체적으로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특사경 제도의 경우, FBI에 경제범죄·산업스파이 특별수사팀을 운용하고 있으며 법무부 내에도 지식재산범죄 전담수사 조직과 같은 특별 수사관 제도를 두고 있다. 특허청·에너지국·국토안보부·국방부 등 부처 별로 ‘기술수사관’이라는 범 부처 포괄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기술수사관은 현장증거수집·압수수색권을 부여받고 있으며, 필요시 즉각 연방검찰과 합동 수사 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마련돼있다.
수사과정은 기술유출 신고를 접수하면, FBI 지식재산특별수사관이 즉시 배정되며, 연방 검찰로 전달되는 체계로 신속하고 원활하게 이뤄진다.
한국은 산업통상부 장관이 국가 핵심기술을 보유한 대상 기관이 사전 승인을 받지 않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승인받아 해외 인수 합병을 진행할 경우 정보수사기관의 장에게 조사를 의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두고 윤 박사는 “기술 유출 관련 수사권 확대에 굉장히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이어진 해설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지식재산처(구 특허청)에서 ‘기술경찰’이라는 특사경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 법 집행에 조심스러워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여러 특사경 제도를 기관마다 유사한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기술경찰은 영업비밀 침해·기술침해 등을 다루고 있는데, 법 체계상 산업부가 담당하는 산업기술·국가핵심기술 보호(산업기술보호법)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산업부에도 특사경을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윤해성 박사는 “산업 기술유출은 정보기관에서 첩보를 입수해서 수사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기 때문에, 정보기관의 역할 강화는 필수적”이라며 “중소벤처기업부와 산업부, 지재처를 비롯한 관련 기관에 전문 특사경을 설치하고 정보기관과 협업하는 방안도 고려해 봐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외국과 같이 전문성이 담보된 정보기관 또는 특사경 제도 도입이 시급하며 협업 체계 역시 매우 중요하다”라며 “이를 위해서 반드시 전문 법원을 설치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는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실이 주최하고 산업부, 중기부, 지재처, 한국안보정책학회,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주관해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