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글로벌 AI 혁신 도시들이 단순한 기술 과시를 넘어 시민 일상을 바꾸는 실질적인 ‘AI 행정’ 체계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1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6 제2회 서울 AI 행정혁신포럼’에는 해외 정책 전문가 3명이 참석해 각 도시의 AI 기술 실증 경험과 행정 조직의 과제를 공유했다.
AI 기반 데이터 분석은 도시의 기반 시설과 생활 환경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됐다. 파비오 두아르테 MIT 센서블 시티 랩(MIT SCL) 부소장(Associate Director)는 “AI는 새롭고 번쩍이는 것을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일상의 공간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라고 정의했다.
기술 전문가에게만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일반 시민들이 스마트폰 앱으로 보행로의 너비나 장애물을 직접 촬영하고 계측하는 크라우드소싱 프로젝트 ‘오픈 웍스(Open Walks)’가 대표적이다. 그는 “서울 등 여러 도시에서 파일럿 프로젝트로 운영 중인 이 시스템은 시민의 이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행로 정비와 같은 실질적인 행정 개선을 끌어낸다”라고 설명했다.
화려한 미래 청사진보다 기존 공공 서비스의 작동 방식을 개선하는 데 AI를 적용한 사례도 눈길을 끌었다. 사이디 알 파라시 두바이 인공지능센터(DCAI) 상임이사(Executive Director)는 두바이 구급대 사례를 들며 “시스템이 고장 나야만 AI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잘 작동하고 있는 서비스도 AI를 통해 한 단계 더 개선할 수 있다”라고 짚었다.
두바이 구급대는 실시간 교통량과 인구 밀집도를 AI로 분석해 구급 차량을 동적으로 재배치함으로써 ‘3분 이내’ 현장 도달 체계를 확립했다. 두바이는 정부 내 27개 기관에 AI 담당 책임자를 지정해 제출된 400여 건의 아이디어 중 90여 건을 실증 사업으로 가동 중이다.
한정된 국가 자원을 핵심 도메인에 집중하는 효율적 접근법은 싱가포르의 주력 전략이다. 클리프톤 푸아 싱가포르 정보통신미디어개발청(IMDA) 디렉터는 국가 AI 전략의 핵심어로 ‘선택과 집중’, ‘속도’, ‘신뢰’를 꼽았다. 푸아 디렉터는 “싱가포르는 대규모 범용 모델 개발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법률과 의료 등 전문 분야에서 실제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싱가포르 법률체계에 맞춰 개발한 언어모델 ‘GPT-리걸(GPT-Legal)’은 판례 분석에 소요되던 업무 시간을 이틀에서 10분 안팎으로 단축했다. 동남아시아 11개 주요 언어와 지역 문화를 집중적으로 학습한 자체 모델 ‘씨라이언(SEA-LION)’도 행정 현장 곳곳에 적용되고 있다.
정부가 AI를 도입하면서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도 소개됐다. 알 파라시 상임이사는 공공과 민간의 협력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로 기술력 없이 인공지능을 내세우는 ‘AI 워싱’을 지목했다. 두바이는 이를 가려내기 위해 자체 기술 검증 제도인 ‘두바이 AI 실(Dubai AI Seal)’을 도입했다. 공공조달 때 해당 인증을 획득한 기업과만 협력하도록 규정해, 공무원들이 기업을 검증하는 데 걸리는 실사 기간을 수개월에서 며칠 수준으로 줄였다.
참석자들은 AI가 도시 행정에 뿌리내리려면 기술 도입 속도에 맞춰 시민의 이해와 활용 능력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두바이는 대국민 AI 교육 프로그램 ‘100만 프롬프터’를 통해 15개월 동안 시민 약 85만 명에게 교육 수료증을 발급했다. 알 파라시 상임이사는 이 프로그램을 르완다와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