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화성 외국인 보호소, 휴대폰조차 반입되지 않는 단절된 공간. 난민 신청을 앞두고 불안과 긴장 속에 있는 이들에게 “변호사가 필요합니까?”, “어느 비자로 입국하셨습니까?”를 묻는 통역은 오직 인간의 입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정보라 작가는 통번역이 기계로 대체될 수 없는 좁고 절박한 현장의 맥락을 증언하며, 단순한 기계적 치환을 넘어 깊은 연대와 인간적 교감을 통해 완성되는 언어의 본질을 짚었다.
거대언어모델(LLM)을 비롯한 인공지능(AI)이 지식 노동 생태계를 급격히 재편하는 지금, 언어 노동을 향한 시선은 ‘기계에 일자리를 뺏길 것인가’라는 단순한 우려를 넘어 ‘어떤 책임의 영역을 지켜낼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AI가 모든 질문에 확률적으로 최적화된 ‘안전한 정답’을 가장 빠르게 제시하는 시대, ‘인간선언 Homo duduri’를 주제로 열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이하 도서전)’은 압도적인 기술의 불길 앞에서 오히려 더 큰 질문을 벼려내는 자들을 ‘호모 두두리(Homo duduri)’라 명명했다.
24일 도서전 현장에서 열린 ‘글쓴이와 옮긴이’ 세미나에 참석한 텍스트 노동의 최전선 종사자들은 효율성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맞서 ‘두두리’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한 뼈아픈 생존 방식을 털어놨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백수린, 이주혜, 정보라 작가는 효율성을 앞세운 AI 번역이 결코 인간의 고유한 언어적 선택을 대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기계의 매끄러움 vs 인간의 울퉁불퉁한 책임감
이날 세미나의 핵심 화두는 AI 번역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불완전함’과 ‘책임’이었다.
이주혜 작가는 원작자가 특정 단어를 선택한 의도를 파악해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가의 모든 개입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출발어와 도착어의 데이터를 교환하는 차원이 아니라, 종결어미 하나를 결정할 때도 시대의 젠더 의식이나 가치관을 반영해야 하는 묵직한 판단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반면 AI는 기계적으로 가장 매끄러운 답안을 도출할 뿐, 어떠한 윤리적·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
백수린 작가 역시 번역 과정에서 AI를 보조 도구로 활용해 본 경험을 언급하며, 기계가 그럴싸한 초벌 번역을 제시할 순 있지만, 최종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가장 적합한 단어를 고르는 주체는 결국 인간임을 분명히 했다. 백 작가는 AI가 통계에 기반한 안전한 답변을 내놓더라도, 문학 텍스트 특유의 뉘앙스와 해석의 결을 살려내는 것은 온전히 ‘인간 번역가’의 몫이라고 말했다.
효율성 이면, 자본의 노동 착취 경계해야
텍스트 노동자들이 실존적 위협을 느끼는 지점은 AI 기술 자체가 아니다. 이 작가는 AI를 이용해 인간 번역가의 노동을 착취하려는 출판 자본의 행태를 꼬집으며, “기술 뒤에 숨어 언어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세력이 진정한 경계 대상”이라고 지목했다.
실제로 최근 번역 업계에서는 AI가 초벌 번역을 전담하고, 인간 번역가에게는 턱없이 낮은 단가로 단순 감수나 윤문(MTPE·기계번역 후편집)만을 요구하는 식의 ‘단가 후려치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세미나 진행을 맡은 허희 문학평론가 역시 “통번역 대학원 교수들이 실무 번역 영역에서 이미 일자리가 급격히 대체되고 있다고 토로하는 실정”이라며 현장의 짙은 위기감을 언급했다.
정 작가의 우려는 사회 전체의 ‘문해력 상실’이라는 더 깊은 곳을 향했다. 그는 고도의 훈련과 인내심이 필요한 번역 노동이 시장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그 역량을 유지할 동력이 사라진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극단적 효율과 비용 절감만 추구하다가는 몇 세대 지나지 않아 글을 섬세하게 읽고 옮길 수 있는 인간의 본원적 역량 자체가 소멸해, 기계에 의사소통 능력을 완전히 외주화하게 될 것이라는 서늘한 경고다.
기계의 속도전 넘어서는 ‘언어 주권’의 무게
이들은 극단적 효율을 거부하고 때로는 비경제적으로 보일지라도 현장 속으로, 그리고 미지의 영역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AI 시대에 텍스트 노동자의 생존은 기술과의 단순한 속도전을 넘어,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치열한 사유와 책임의 영역을 어떻게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다.
산업 현장이 AI를 통해 물리적 효율을 극대화하더라도, 인간의 맥락과 감정이 교차하는 언어 노동의 최전선은 결코 단순한 데이터 처리로 환원될 수 없다. 기계가 뱉어내는 매끄러운 정답보다 인간이 치열하게 고민한 ‘울퉁불퉁한 오답’이 더 가치 있는 이유다. 언어 노동자들의 고민은 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다. 무책임한 기계 번역과 얄팍한 자본의 효율성에 언어의 통제권과 의미를 넘겨주지 않겠다는 묵직한 직업적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