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디지털 서비스가 국민의 일상과 직결된 핵심인프라로 부상함에 따라, 개별 기업의 시스템 장애를 국가적 차원의 재난으로 관리하기 위한 전용 모법 제정이 본격화된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는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디지털재난안전관리법’(가칭) 제정안을 논의하는 전문가 간담회가 열렸다. 이번 제정안은 기존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 등에 산재한 재난 관리 조항을 통합하고 관련 사업자 간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해 체계적인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곽정호 호서대학교 빅데이터AI학부 교수는 기존 디지털 안전 3법과의 관계를 설명하며 통합법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곽 교수는 “현행법들은 산업 정책이나 이용자 보호에 치중돼 있어 재난 관리 기본법으로 활용하기엔 입법 취지가 다르다”고 짚었다. 예방부터 복구까지 전주기 관리를 위한 일원화된 입법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제정안에는 해저 통신케이블 보호와 함께 실질적인 현장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조항들이 대거 신설됐다. 먼저, 전 세계 데이터 트래픽의 99%가 경유하는 해저 케이블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포섭해 관리한다. 곽 교수는 “AI 시대 핵심인 전력과 트래픽 보호를 위해 해저 케이블을 디지털 재난 관리 대상에 포함했다”며 “과거 개별 기업의 몫이었던 영역을 국가가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 말했다.
지자체의 자가망이나 선로가 공사 중 단선되는 문제를 막기 위한 ‘굴착 정보 공유’ 조항도 도입됐다. 기존에는 특정 지역에서 상시 발생하는 단선 문제에 대한 정보 공유 체계가 부족했으나, 신설 조항을 통해 이를 개선하고 지역적 통신 장애를 예방할 수 있게 됐다. 곽 교수는 “지하 공동구나 관로에 대한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면 고질적인 단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관 협력을 상시화하기 위한 ‘디지털 안전관리 협의체’와 전담기관 지정 근거도 마련됐다. 재난 발생 시에만 꾸려지던 비상 TF(태스크포스) 체계에서 벗어나,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평시에도 잠재적 위험 요소를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법 제정의 배경에는 대규모 통신 장애로 인한 사회적 피해 경험이 자리한다. 2018년 11월 발생한 KT 아현국사 화재 당시 전화선 21만 회선과 광케이블 220조가 소실되며 도시 기능이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재난 대응 체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2020년부터 디지털 재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 중이다.
현재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KICI)은 24시간 365일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하며 KT 등 기간통신사 11개, 구글 등 부가통신사 10개 사 등을 관제하고 있다. 시스템 고도화 측면에서는 디지털 트윈과 AI 기반 예측 기술이 도입된다. 공공 데이터를 가상 공간에 재현해 피해 범위를 자동으로 산출하고 대응 우선순위를 도출함으로써 사전 예측 중심의 체계로 전환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