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2038년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Detroit Become Human, 2018년 출시)’은 인간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흡사한 휴머노이드 로봇 ‘안드로이드(Android)’가 대중화된 세계관을 제시한다.
게임에서 안드로이드는 산업계는 물론 군인, 경찰, 청소부, 판매원 등 일상 곳곳에 보급돼 사회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대량의 실직자가 발생했고 반 안드로이드 시위가 도심 한가운데서 벌어지고 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며 이러한 게임 속 설정은 현실이 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2020년 인수한 미국 로봇 제조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는 2013년부터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개발해 왔다. 그동안 험지 주행을 비롯해 인간과 유사한 동작을 재현하는 데 치중해 왔던 아틀라스는 지난해부터 현대차의 미국 공장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이달 6일부터 9일까지(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 2026’에서 아틀라스 연구형 모델이 차량 제작 공정에서 부품을 운반하는 시나리오를 시연하고, 양산형 제품인 개발형 모델을 공개했다.
아틀라스는 360° 카메라와 머리 및 손에 탑재된 센서를 통해 주변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새로운 작업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다. 관절은 56개의 자유도를 갖춰 완전히 회전할 수 있고 4지(연구형은 3지) 그리퍼를 장착해 다양한 형태의 제조 부품에 유연하게 대응 가능하다. 최대 50kg의 운반 능력과 자율 배터리 교환 기능도 탑재됐다.
CES 2026에서 아틀라스는 ‘피지컬 AI(물리 인공지능)’가 무엇인지 가장 잘 표현한 제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약 2만 명의 참관객이 현대차 부스를 방문했다.
현대차는 향후 미국 조지아주의 전기차 전용 공장인 HMGMA(현대자동차그룹 Metaplant America)를 비롯한 글로벌 생산 거점에 아틀라스를 투입하고 공정 단위별 검증을 거쳐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삼성증권의 ‘CES 2026 건강한 하드웨어에 건강한 AI가 깃든다’ 리포트에 따르면,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28년까지 아틀라스를 3만 대 양산할 계획이다. 가격은 ‘2년 내 투자비 회수 가능’한 가격으로 출시 예정이며, 초기 가격은 약 2억 원(13~14만 달러)으로 추정하지만 1만 대 이상 생산 시 50%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틀라스의 도입 비용이 일반 생산직 노동자 연봉보다는 높지만 24시간 작업이 가능한 만큼, 시간당 운영비용은 사람 대비 5분의 1가량 낮아지는 ‘저임금 로봇’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틀라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현대차 노조는 22일 소식지를 통해 ‘노사 합의 없이 단 1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음을 명심하라’라고 경고했다. 로봇이 초기 구입비 이후 유지비만 발생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이익극대화를 노리는 ‘자본가’에게 좋은 명분이며, 현대차에 인건비 절감을 위해 인공지능 로봇 투입이 가시화되고 있어 고용충격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국민의힘 고동진 의원은 26일 자신의 SNS에서 ‘현대판 러다이트(Luddite) 식 발상’이라며 ‘멈추는 건 기술의 발전 뿐만 아니라, 기업의 성장 발전이 멈추고 대한민국의 산업 발전이 멈추게 되는 것’이라고 1811년 영국에서 벌어진 ‘러다이트 운동’을 비유 삼아 지적했다.
러다이트 운동은 천을 만드는 방직기(직조기)가 도입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노동자들이 공장의 기계를 파괴했던 노동운동이다. 그러나 당시 이들은 단순한 기계의 도입에 반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생산성이 급증했지만,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와 악화하는 삶의 질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진짜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러다이트 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불붙은 노동자들의 권리 확대 투쟁은 1830년대 보통선거를 요구하는 ‘차티스트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역시 1858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무산되고 말았지만, 1867년과 1884년 영국 선거법 개정으로 보통선거가 자리 잡는 데 영향을 줬다.
한편, 고 의원은 ‘혁신을 잘할 수 있게 전환을 위한 정책을 준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말과 함께 ‘변화라는 두려움에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책임’이라고 짚었다.
아틀라스는 대기업과 거대 노조 사이에서 AI 시대의 러다이트 대상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뿌리산업을 필두로 대부분의 산업현장은 구인난을 겪고 있으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AI·로봇 자동화 도입이 대두되고 있다. 현장의 모자란 손을 첨단 기술을 통해 메꿔보겠다는 것이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현장에서 아틀라스는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가 아니라, 고위험·고강도 공정을 대신 수행하는 보조 수단이 되는 셈이다.
CES 2026에서 피지컬 AI를 대표한 아틀라스는, 산업 구조 전환의 상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술 발전의 결과를 오롯이 노동자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디스토피아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기술로 현장의 빈자리를 메우고 생산성을 향상하는 것만큼,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재교육·직업훈련 등 인력 정책을 마련하는데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2038년, 국회 앞 광장에서 ‘아틀라스 NO, 인간 일자리를 보장하라’와 같은 구호가 들리는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