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의 급격한 성장이 물류 산업의 탈탄소 전략에도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기차 중심의 단순한 전환을 넘어 전력 수급 리스크를 고려한 ‘에너지 믹스’와 도심 배송 효율을 높이는 ‘스마트 조업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14일 국회에서 열린 ‘탄소중립 유통·물류 정책 세미나’에서는 규제 중심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며, 현장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인센티브 기반 전환 전략이 논의됐다.
박석하 물류ESG연구소장은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 구조 변화를 물류 탄소중립의 핵심 변수로 꼽았다. 박 소장은 “11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2038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6.2GW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전력 구조 변화에 대비해 물류 부문의 탄소중립 로드맵을 새롭게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특히 물류 부문의 전면적인 ‘전동화(Electrification)’가 가져올 위험성을 경고했다. 배송 차량의 충전 수요가 집중될 경우 국가 전력망 부담이 늘고, 전력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전력 피크 부하를 키우는 획일적 전환보다 전력망 안정성을 고려한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무조건적인 전기차 확대보다는 CNG(압축천연가스), 수소 등을 혼합한 ‘에너지 믹스’ 전략이 제시됐다. 친환경 연료 전환에 따른 기술 리스크를 정부가 분담하고, 전력 사용 회피 성과를 인센티브로 인정해 기업의 투자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에너지 믹스를 통해 전력 사용을 분산하는 기업에 재정·금융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도심 내 배송 효율을 극대화할 ‘스마트 조업구역(Smart Loading Zone)’ 도입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이는 IoT 센서와 카메라로 화물차 전용 조업 공간을 실시간 관리해 배송 차량의 배회 주행과 불법 주정차를 줄이는 방식이다. 박 소장은 일본과 미국의 마이크로 허브 사례를 언급하며 “도심 내 국공유지를 전용 하역 공간으로 제공해 공회전과 대기오염을 낮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 물류 기업을 위한 ‘단위기반(Unit-based) CO₂(이산화탄소) 산정 가이드’ 보급의 시급성도 제기됐다. 기존 연료 소비량 기반 방식은 데이터 관리가 미흡한 중소업체에 과도한 진입장벽이 된다는 지적이다. 박 소장은 “복잡한 계산 대신 배송 박스 수나 이동 거리 등 현장 실무 단위로 측정하는 모델을 제공해 참여 문턱을 낮춰야 한다”며 실무형 모델 도입을 촉구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물류 탄소중립이 단순한 규제가 아닌 산업 경쟁력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력·연료·제도 전반을 아우르는 실무형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AI 시대의 전력 환경 변화 속에서 물류 산업의 탈탄소 전략 역시 보다 정교한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