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흐름에 맞춰, 국회에서도 자율주행을 주제로 하는 두 개의 행사가 개최됐다. 13일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KADIF)과 민형배 의원이 ‘자율주행 기술 관련 산·학·연 간담회(이하 간담회)’를 진행했고, 14일에는 박상혁·김한규·김우영 의원이 함께 ‘테슬라 FSD 국내 상륙과 우리나라 모빌리티 산업의 미래 토론회(이하 토론회)’를 열었다.
행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국 자율주행 산업의 한계점으로 ‘규모의 경제’를 짚었다. AI(인공지능) 산업과 같이 빅테크가 선도하는 미국과 국가에서 주도하는 중국에 비해 투자·GPU·인력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규모적으로 한참 열세라고 입을 모았다. 본보에서는 두 행사에서 전문가들의 발제 및 토론을 통해 한국 자율주행 산업의 현황과 나아갈 길을 살펴봤다.
산업통상부는 지난해 11월 ‘K-모빌리티 선도전략’을 수립하고, ‘2030년 자율주행 기술 선도국 진입’을 목표로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한국 자율주행 기술·산업 발전 전략으로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을까.
서울대학교 최준원 교수는 14일 토론회에서 발제를 진행하며 “미국은 빅테크 중심으로 인재를 유치해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했으며, 중국은 정부 주도로 기술 생태계 협력 체계를 구축해 미국을 빠르게 추격 중”이라며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며,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글로벌 기업인 현대자동차그룹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 해외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큰 기회를 포기하는 셈”이라며 “내연기관·반도체·스마트폰 모두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의 위치에 도달한 만큼, 자율주행 기술 역시 독자적인 E2E(End-to-End, 종단 간 학습) 자율주행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진 전략 설명에서 최 교수는 기업과 대학의 긴밀한 협력체계를 제시했다. 국내 자율주행 기업이 AI(인공지능) 전문 인재를 유치하기 쉽지 않은 만큼, 대학의 인재를 활용해 자율주행 특화 AI를 개발하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데이터 인프라 구축도 핵심 과제로 꼽혔다. 수집된 데이터를 정제·선별하는 ‘데이터 파이프라인’ 전문 기업을 육성하고, AI 기반 자율주행 차량만 운행하는 시범 지역을 통해 데이터 수집 및 스케일업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데이터 수집·관리에 대한 규제 개혁도 함께 제시했다.
최준원 교수는 “자율주행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학습을 위한 전용 GPU 공유 및 대여 사업도 큰 규모로 추진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13일 간담회에서 한국자동차공학회 황성호 전(前) 회장은 “실증과 법이 자동으로 연결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라며 “실증이 이뤄진 분야에 대해 선제적으로 승인 후 규제를 보완하는 선도적 체제로 전환되길 바란다”라고 제언했다.
더불어 “현재 자율주행 산업은 산업통상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경찰청 5개 부처에서 관리하고 있어, 창구가 너무 많고 규제도 각각 운영돼 혁신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다”라며 “통합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의 이혁기 본부장은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AI가 적용되면서 산업 자체가 규모의 경제로 전환돼, 자본과 인력 없이는 어려운 형국이 됐다”라며 “생존을 위해선 현대자동차부터 모든 기업과 학계·연구계가 하나의 몸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다”라고 동향을 살폈다.
이 본부장은 “최종 상용화까지 이어지는 연구 결과물이 연계성 있게 활용되는 형태의 연구개발 기획이 많이 조성되길 바란다”라고 의견을 보탰다.
산학연의 협력 필요성도 제기됐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민경욱 실장은 “대규모 실증을 통해 동일한 규격의 데이터셋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동일한 조건의 차량 플랫폼으로 진행한 자율주행 AI 데이터를 중소기업·스타트업 등에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 실장은 덧붙여, “국가 주도의 데이터셋 표준화를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글로벌 리더 기업들을 추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규모 데이터셋을 학습하기 위한 GPU와 같은 컴퓨팅 인프라 자원 지원도 필요하다”라고 했다.
법제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SK텔레콤(SKT)의 유미희 팀장은 “한국 자율주행 산업 생태계에서 이동통신사업자처럼 자율주행차 서비스를 최종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오퍼레이터(서비스 제공·운영 주체)’ 역할이 비어 있다”라고 짚었다.
유 팀장은 “도시 단위 200대 이상의 자율주행 실증을 비롯해 대규모 서비스 보급이 시작되면 운영과 관련된 책임과 의무를 가진 주체가 분명히 필요하다”라며 “영국에서는 차량 모니터링·장애 및 사고 대응 등을 책임과 의무로 규정하고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것을 규정으로 두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기술 개발과 동시에 오퍼레이터 관련 제도를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현재 오퍼레이터 역할은 자율주행 차량을 공급하는 기업에서 담당하는 구조인데,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법제화를 진행한 후 공공, 기술개발사, 차량제작사 등 어떤 분야에서 담당할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간담회를 주관한 민형배 의원은 “입법 준비에 나서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14일 토론회에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국무조정실 우향제 과장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자율주행 관련 규제샌드박스는 총 10건이 진행되고 있다. 도심 공간 자율주행 실증 3건, 화물차 자율주행 2건, 셔틀버스 운행 1건, 자율주행 지도·충전 등 시스템 4건이다.
우향제 과장은 “대기업보다는 스타트업 중심으로 제도가 운용되고 있으며, 정부는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더 빠르게 기술 상용화에 도달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