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대전환과 공급망 재편이 맞물리며 중견기업의 생존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용 절감보다 기술 적응력이 핵심 경쟁력이 된다고 강조한다.
20일 서울 웨스틴조선에서 열린 ‘2025 중견기업 혁신 컨퍼런스’에서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중견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르게 변하는 기술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이라며 “AI 활용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경영자가) 일단 써보면서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 변화가 산업 재편을 주도하는 만큼 생존을 넘어 성장의 관점에서 기술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현재 세계 경제를 “대전환기”로 규정하며 AI 발전 속도가 3~6개월 단위로 두 배씩 빨라지고 있다고 봤다. 이어 제조·서비스의 경계가 사라지고 가치사슬 구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기술 적응이 늦어진 기업은 “생존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변화의 파고를 넘어가는 소극적 접근이 아니라 새로운 물결에 올라타겠다는 적극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통상환경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관세 정책을 ‘정치·재정 중심’ 정책으로 분석했다. 그는 “미국 관세정책의 핵심은 무역 불균형 해소가 아니라 감세를 지속하기 위한 재정적 동기”라며, 관세를 통한 재정 수입이 확보되는 구조인 만큼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관세 체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보호무역 강화가 구조화된 만큼 중견기업의 시장 전략도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의 구조 변화도 중견기업이 주목해야 할 변수로 꼽았다. 그는 중국이 고령화와 부동산 부채 등으로 성장률 둔화에 직면했지만, 디지털 경제 기반과 내수 규모를 바탕으로 기술 경쟁력은 여전히 강하다고 평가했다. 또 “GDP 성장률만으로 중국의 기술력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며 향후에도 미·중 기술 경쟁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대외경제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경상수지 안정이 국가 신용도, 외환시장 안정성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이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고령화로 경상수지가 적자 전환될 수 있는 만큼 해외 직접투자, 글로벌 인재 확보, 기술 협력, 서비스 수출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통합형 전략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특히 그는 정부와 기업 간의 촘촘한 소통을 강조하며, EU 규제 대응, 대기업 해외투자에 따른 생태계 변화, 중국 시장 구조 변화 등 다양한 현안을 한 번에 고려하는 전략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견·중소기업이 혼자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민관 협력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중견기업에 미칠 직접적인 리스크에 대해서는 “미·중 통상 압력보다 기술 변화에 뒤처지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 관세 조치가 부각되고 있지만, 중국의 과잉생산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기존의 가격경쟁 전략은 한계에 다다랐다고 봤다. “지금은 규제, 표준, 인증 등 비가격 요소의 경쟁력이 훨씬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중견기업 내부의 ‘AI 체질화’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다. “스마트팩토리 같은 대규모 투자를 논하기 전에 문서 작성, 편집 등 사소한 업무부터 AI를 활용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경영진이 먼저 많이 써봐야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활용하게 되고, 그 과정이 곧 기술 문화가 된다”고 조언했다. 이어 “작은 단계부터 꾸준히 AI에 노출되면 결국 시장 경쟁력으로 연결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