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확산에 따른 생산성 향상 및 삶의 질 개선이라는 기대와 고용 불안이라는 우려가 공존하는 가운데, 국민 10명 중 9명 이상이 사회 안전망 강화를 위한 ‘기본사회’ 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숙의토론 결과가 나왔다. 특히 AI 전환에 따른 재원 마련과 활용에 대해 단순한 현금 지원이나 단기 지원보다는 장기적 재투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직속 기본사회위원회는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AI 전환에 따른 기본사회 공론화 국민숙의단 토론회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토론회는 무작위 전화걸기(RDD) 방식으로 선발된 전국 만 15세 이상 국민 223명이 참여했다. 특히 AI 전환의 영향을 가장 오래 받게 될 청소년 및 청년층(만 15세~34세)을 전체의 절반 수준인 102명으로 구성했다.
국민숙의단은 8월 25일 모집 및 사전 학습·질의응답을 시작으로 지난달 19~20일 양일간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에서 숙의토론회를 진행했다. 위원회는 모집 시점, 토론회 시작 전, 토론회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세 차례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AI 기술 기대 속 고용·소득 불평등 우려… 비정규직 위기감 더 커
설문 분석 결과, AI 전환에 대해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95%는 사회 전반으로 AI 도입이 확대되는 데 긍정적이었지만, AI가 자기 삶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응답은 82%에 그쳤다. 청소년·청년층은 76%에 불과했다. AI 전환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응답은 숙의 후 98%로 늘었다.
AI에 대한 우려는 일자리와 소득에 집중됐다. ‘청년 취업기회 감소’는 86%에서 95%로, ‘중장년의 재취업·직업전환 곤란’은 86%에서 91%로 높아졌다. AI 활용 격차가 심각하다는 응답도 70%에서 88%로 늘었으며, 35세 이상에서는 심각하다는 응답이 92%였다.
AI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일부 대기업·플랫폼에 집중될 것이라는 응답은 90%, 소득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86%로 조사됐다. 청년층의 소득 불평등 우려는 숙의 전 72%에서 85%로 증가했다.
고용 형태별 위기감도 다르게 나타났다. ‘10년 안에 자기 일이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라는 응답은 정규직이 숙의 후 62%에서 59%로 낮아진 반면, 비정규직과 플랫폼 종사자는 51%에서 67%로 높아졌다.
현재의 노동소득 중심 분배체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응답은 14%에 불과했으며, 새로운 분배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는 응답은 82%였다. 숙의단의 78%는 고용위험을 기업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봤으며, 기업이 재고용·고용전환 지원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응답은 93%로 나타났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공공이 일자리와 적정임금을 제공해야 한다는 응답은 83%였다.
‘기본사회’ 필요성 93% 공감…의료·주거 등 기본 서비스 보장 우선
국가와 공동체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소득·주거·건강 등 삶의 기본 영역에서 적정한 수준을 보장해야 한다는 ‘기본사회’ 구상을 두고는 숙의 전 91%, 숙의 후 93%였다. 기본사회 실현 전망은 65%에서 83%로 올랐으며, 34세 이하의 실현 기대는 49%에서 72%로 상승했다.
기본사회 정책의 확대로 일자리가 불안해도 생활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숙의 후 91%, 재교육·이직·창업 등 새로운 도전을 지원할 것이라는 응답은 93%였다. 이를 통해 세금 부담이 늘 것이라는 우려는 90%, 공공기금 운용 손실 우려도 80%로 나타났다.
기본사회의 중요한 내용은 의료·주거·돌봄과 같은 기본서비스 보장(60%)이 가장 많았고, 기본적인 소득 보장(42%)이 뒤를 이었다. 우선 보장해야 할 기본서비스는 의료(86%), 주거(52%), 돌봄(50%) 순이었다. 여기서 돌봄에 대한 의견은 숙의 전 35%에서 50%로 늘었다.
또한 전환기에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응답이 높았다. ‘가족 및 지역사회 돌봄’이 94%, ‘재교육·훈련’은 92%, ‘구직·직업 전환’에 대해선 84%가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답했다. 확대가 필요한 소득 보장 방식은 참여소득 39%, 전환기 소득 37%, 사회보험 강화 32%였다.
AI 재원 활용, 재투자·미래위기 대응으로 인식 전환
기본사회위원회는 이번 숙의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발견한 점으로, 재원 사용처에 대한 숙의단의 판단이 ‘당장 나누기’에서 ‘미래를 위한 축적과 재투자’로 옮겨갔다고 강조했다.
숙의 전 AI 관련 재원의 우선 사용처는 ‘직업 재교육·고용전환 지원(38%)’이 많았으나, 숙의 후에는 ‘교육·의료·돌봄 등 기본서비스 확충(46%)’으로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국민 공동자산·미래대응기금 조성’은 숙의 전 14%로 가장 적었으나, 30%로 늘어나면서 세 번째 우선 사용 분야로 지목됐다.
일시적 추가 재원을 기금이나 공동자산으로 남겨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응답은 46%에서 61%로, 공동자산 투자수익을 재투자해야 한다는 응답은 49%에서 67%로 상승했다. 미래대응기금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95%였다.
재원 마련 방법으로는 공기업·공공자산·국가투자 수익 활용(98%), 재정 사업 효율화(97%), 초과세수·개발이익 적립(96%) 등 기존 재정과 공공자산의 투명한 활용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AI로 큰 이익을 얻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공감대가 높게 형성됐다. 이익의 일부를 확보해 고용·소득 전환 지원으로 쓰자는 방안에 83%, 초과 이윤을 협력사·종업원과 공유하는 방안에는 78%가 동의했다.
브리핑을 진행한 김정훈 기본사회 공론화 전문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숙의단이 바라는 기본사회는 최소한의 생활 보장과 공정, 존엄이라는 가치로 요약된다”라고 평가했다.
이번 숙의토론 결과는 국민숙의단 22명과 전문가 22명으로 구성된 ‘정책의제기획단’에 전달돼 구체적인 정책으로 다듬어진다. 10월 18일과 31일 두 차례 워크숍을 거쳐 정책제안서를 마련하며, 11월 초 국민숙의단의 최종 확인을 거쳐 11월 내에 제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