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서비스 이용의 쾌적함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 주장과 생리적 현상까지 위생 관리 소홀로 치부해 생계를 위협받는다는 노동계의 반발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기술과 플랫폼이 노동의 결과만을 보여주는 시대에 소비자의 불쾌감 표출과 노동자의 인격권·생계권 사이의 깊은 딜레마가 만들어지는 모습이다.
[AI의 선택]은 사회가 쉽게 답하지 못한 질문을 AI에 던져보는 기획이다. AI의 답변을 정답으로 삼자는 뜻은 아니다. 인간이 쌓아온 데이터와 논리가 어떤 판단으로 이어지는지 살피고, 그 답변의 설득력과 한계를 함께 따져보려는 시도다.
최근 SNS에서는 가전 설치 기사가 고객의 집에 냉장고를 설치한 후, 땀 냄새가 난다며 별점 0점을 받은 일이 화제가 됐다. 가전 설치는 대부분 가전회사와 설치 기사가 도급 계약을 맺는 구조인데, 한 명의 고객이라도 별점에서 만점을 주지 않으면 인센티브 미지급, 재교육, 계약해지 등 불이익을 당한다.
댓글에는 작업자에게 바닥에 땀을 흘리지 말 것을 요구하거나, 기사가 방문한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따라다니면서 발이 닿은 곳을 눈앞에서 걸레로 닦았다는 등의 직간접적인 경험담이 이어졌다.
“폭염 속 육체노동으로 생긴 땀 냄새, 고객이 감수해야 할 ‘노동의 흔적’일까 아니면 노동자가 관리해야 할 ‘서비스 품질’일까?”
기자는 주요 LLM(거대언어모델) AI 서비스인 챗지피티(ChatGPT, 기본 모델), 제미나이(Gemini, 3.6 Flash 모델), 클로드(Claude, Sonnet 5 모델), 그록(Grok, 4.5 빠른 모델), 딥시크(DeepSeek, 빠른 모델)에 같은 질문을 입력했다.
고객의 쾌적할 권리와 노동자의 생리적 한계…AI도 갈렸다
AI들의 선택은 엇갈렸다. 챗지피티와 그록, 딥시크는 ‘노동자의 노력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불쾌감을 유발하는 땀 냄새는 ‘서비스 품질’의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라는 입장을 택했다.
폭염 속 육체노동에서 땀 자체는 불가피한 생리 현상이지만, 체취의 정도나 지속·관리 여부에는 노동자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고객 입장에서는 가전 설치 기사가 자신의 생활공간에 방문하는 순간부터 서비스받는 경험이 시작되기 때문에, 심한 체취에서 야기되는 불편을 감수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짚었다. 더위 속 노동으로 땀을 흘린 것은 이해하지만, 최소한의 위생·청결 기준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제미나이와 클로드는 ‘폭염 속 땀 냄새는 노동자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생리적·구조적 노동의 흔적’이라고 답했다.
클로드는 ‘서비스 품질’이라는 프레임을 지적했다. ‘고객이 불쾌하지 않을 권리’가 ‘노동자가 인간의 생리적 한계를 극복할 의무’ 위에 놓음으로써, 노동의 물리적 조건을 지운 채 개선 압력만 노동자에게 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고객이 ‘감수’한다기보다는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단언했다. 고객이 느끼는 불쾌감의 해결책을 노동자 개인의 권리 실패로 몰아가는 것은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제미나이 역시 노동자가 최소한의 위생 관리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권장할 수 있으나, 극심한 폭염과 연속 작업 환경에서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기에 ‘서비스 품질 하자’로 규정해 불이익 조치를 주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봤다.
흥미로운 점은 입장을 달리한 AI들도 ‘폭염 속 땀 냄새를 이유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라는 지점에서는 의견이 모였다는 것이다. 땀 냄새를 무조건 ‘노동의 숭고한 흔적’으로 볼 수도 없지만, 이를 서비스 결함으로 규정해 노동자에게 완벽한 위생을 요구하는 것 역시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별점이 대신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렇다면 이 딜레마는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AI들은 이 딜레마 자체의 ‘구조적 결함’이 있다고 분석했다. 책임의 무게중심을 노동자 또는 고객으로 양분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기업에서 노동환경과 서비스 품질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AI는 기업이 노동자에게 폭염 속 작업을 견딜 수 있는 휴식·환기·세면 환경과 위생용품 등을 제공하고, 고객 평가 시스템에서도 노동환경을 고려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또 고객이 ‘땀 냄새가 나서 불편하니, 노동자에게 씻을 시간과 환경을 보장하라’라는 시스템을 향해 민원을 제기하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어릴 적 기억엔 이런 장면이 있다. 가전을 설치하거나 보일러를 수리하러 누군가 집에 오면 부모님은 늘 음료수 한 잔을 내밀었다. ‘더운데, 비 오는데 고생하십니다’와 같은 인사는 덤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서비스가 별점과 같은 정량적 결과물로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는 점수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고생의 증거였던 땀은 이제 서비스의 하자로 읽히고 있다.
결국 문제는 땀 냄새를 누가 감수해야 하느냐가 아니다. AI는 이분법적 갈등이 아니라, 생리적 한계까지도 개인의 결함으로 치부하는 별점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압박을 지목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묻는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에게 건네야 할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