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자동차 산업의 무게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하면서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가 급변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확산과 중앙 집중형 아키텍처 전환이 맞물리며, 완성차 업체와 반도체 기업 간의 협업 구도도 재편되는 모양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최근 발행한 ‘모빌리티 인사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4년 830억 달러에서 2030년 1천380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의 파이가 커짐과 동시에 기술의 질적 전환도 빨라지고 있다.
MCU 중심에서 고성능 SoC로 ‘아키텍처 대전환’
전문가들은 미래차 기술 진화의 핵심으로 고성능 컴퓨팅(HPC) 시스템의 도입을 꼽는다. 수백 개의 전자제어장치(ECU)가 분산돼 있던 기존 구조가 중앙 컴퓨팅 시스템 기반의 ‘조널(Zonal) 아키텍처’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찬훈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과거 분산된 MCU(마이크로컨트롤러) 중심 구조와 달리, 현재의 조널 아키텍처에서는 방대한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SoC(시스템온칩)가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천이우 넥스트칩 연구소장 역시 고성능 컴퓨팅과 인공지능(AI) 연산 확대를 짚으며 하드웨어를 하나의 큰 플랫폼으로 구성해 이후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급망 재편…‘수직적 분업’에서 ‘수평적 파트너십’으로
아키텍처의 변화는 전통적인 자동차 부품 공급망(Supply Chain)의 붕괴와 재편을 야기했다. 과거 ‘완성차(OEM)-1차 부품사(Tier 1)-반도체 기업’으로 이어지던 수직적 구조가 완성차 업체와 반도체 설계사가 직접 소통하는 수평적 협업 형태로 바뀌고 있다
윤상원 서울대학교 교수는 차량용 반도체 산업이 ‘구매 중심 구조’에서 ‘협업 중심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며 ‘완성차 업체와 반도체 기업 간의 수평적 공동 설계가 확산되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완성차가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에 직접 관여함에 따라 반도체 기업도 단순 부품 공급자를 넘어 플랫폼 단위의 협력 파트너로 역할이 확대됐다.
韓 반도체 생태계 과제…‘투트랙 전략’과 ‘실증 인프라’
글로벌 빅테크가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입하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의 자생력 확보를 위한 방향성도 제시됐다. 임병철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술 영역을 구분한 ‘투트랙(Two-Track) 전략’을 주문했다. 고성능 연산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AP·SoC 등 첨단 반도체와 MCU·전력 반도체 등 범용(레거시) 반도체를 아우르는 균형 잡힌 생태계 구축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차량용 반도체의 신뢰성 평가와 기능 안전 인증을 뒷받침할 실증 인프라 확충은 생태계 완성의 당면 과제다.
SDV는 첨단 기술의 집약체임에도 결국 자동차라는 물리적 환경에서의 안전성이 최우선으로 강조된다. 강한별 한국자동차연구원 센터장은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를 설계, 검증, 인력이라는 세 가지 축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하며, 첨단 반도체의 성능 경쟁과 차량 신뢰성 확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