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AI로 대변되는 디지털화가 진행되는 동안 해킹과 국정자원 화재 등의 사건 발생은 현재 한국의 산업계가 가고 있는 방향과 속도에 대해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노조법과 중대재해법 등 각종 정책들은 산업계의 주축인 근로자와 사측의 공생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기도 했다.
한편, 전 세계의 화두인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신설되면서 산업계 역시 발빠른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으며, 하반기에는 전인미답의 코스피 4,000P에 도달하기도 했다. 아울러, 2기 트럼프 정부 이후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과제인 ‘관세전쟁’도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일단락됐다.
이에 본보는 올해 산업계를 달군 10가지 뉴스를 선정해 독자들과 올 한 해를 돌아보고자 한다.
한국 반도체는 올해 기술적 성과와 정책적 지원이 맞물리며 ‘재도약’ 기회를 잡는 모양새다. 정부는 AI·반도체 중심의 대규모 예산과 법·인센티브로 민간 투자 유인을 높이고 있으며, 기업들은 ‘High NA EUV’ 등 차세대 장비 도입과 AI 기반 제조 전환으로 생산성·경쟁력 강화를 노리고 있다. 특히 최근 엔비디아와의 대규모 협력이 국내 분위기를 단번에 바꿔놓는 촉매가 됐다.
핵심은 ‘AI 인프라를 통해 제조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정부 목표다. 기획재정부은 ‘글로벌 반도체 경재력 선점을 위한 재정투자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반도체 분야에 대한 투자 규모를 기존 26조 원에서 33조 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AI 예산 증액과 함께 국가적 AI 허브 구축도 강조했다.
지원안에는 송전선 지중화 비용의 70% 국비 지원, 소재·부품·장비(PME) 신규 투자 시 중견·중소기업도 건당 최대 150억 원(기업당 200억 원)까지 보조를 받는 등 인프라·소재·투자 구조 전반에서 세제·보조금 인센티브를 강화하기로 했다. 산업 생태계를 단순한 생산 위주에서 설계·생산·장비·소재까지 밸류체인 전체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월 말 엔비디아의 GPU 공급 계약 소식이 한국 반도체·AI 산업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엔비디아는 한국 정부 및 삼성·SK·현대차·네이버 등과 손잡고 블랙웰(Blackwell) 계열 GPU 약 26만대를 공급하기로 했다. 최대 14조 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와 관련해 정부에 5만 장, 각 기업에 약 5~6만 장씩 배정된다.
기업 측면에서 이 물량은 반도체 제조 현장에 즉각적 파급을 줄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GPU를 활용해 제조 데이터의 실시간 분석·학습을 강화하는 지능형 제조 혁신 플랫폼 ‘AI 팩토리 인프라’를 확충하고,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업체들도 AI로 공정·수율·개발주기를 단축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엔비디아의 공급은 단순한 장비 도입을 넘어 ‘AI로 공정 전환’을 가속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과제는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외국 기업 기술 생태계에 대한 의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례로 중국에서는 자체 AI 칩과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성과를 내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엔비디아의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첨단 장비 도입과 대규모 클러스터 구축을 위한 막대한 자본투자와 고급 장비와 전문인력 확보가 병행되지 않으면 기대만큼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된다. 최근 SK하이닉스의 High-NA EUV 상용화 도입은 기술적 전진을 보여주지만, 이 같은 설비 투자가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되려면 중소 부품·장비사의 역량 강화와 공급망 내재화가 필요하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변수다. AI용 고성능 GPU와 첨단 제조 장비는 미-중 무역·기술 갈등의 영향을 크게 받는 품목으로, 수출통제나 공급제한 가능성은 언제든 산업 전략을 흔들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단순한 장비 유치에서 끝나지 않고, 소재·부품·장비(PME) 자립, 인력 양성, 국제 협력 다각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결론적으로 엔비디아의 대규모 GPU 공급은 한국 반도체·AI 생태계에 가속도를 부여할 만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 속도를 지속 가능한 경쟁력으로 전환하려면, 장비·인력·공급망이라는 세 축을 동시에 강화하는 전략적 투자와 정책 집행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