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국내 바이오 산업이 ‘바이오 시밀러(복제약)’를 넘어 ‘AI 신약 개발’로 체질 개선을 선언했다. 더 이상 추격자 전략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전문가들은 데이터 표준화와 사회적 합의 없이는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8일 ‘국가전략기술 서밋’에서 윤태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K-바이오의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했다. 그는 “바이오 시밀러 분야에서 성과를 냈지만, 가격 경쟁 심화로 한계에 봉착했다”며 “이제는 ‘복제’가 아닌 독자적인 신약 ‘설계’로 넘어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그 해법으로 AI 기반 항체 설계를 제시했다. 그는 서울대 연구팀이 자체 구축한 플랫폼으로 학습시킨 ‘AbGPT’ 사례를 소개하며 “기존에는 무수히 많은 항체 중 바늘 찾기 식으로 후보를 찾았다면, 이제는 컴퓨터 안에서 클릭 한 번으로 항체를 설계하는 기술이 현실화됐다”고 설명했다. 해당 기술은 현재 삼성바이오에피스 등과 협력해 실증 단계에 들어갔다.
하지만 기술이 상용화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황희 카카오헬스케어 대표는 이어진 토론에서 “신약 후보 물질 발굴(Discovery)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려면 임상 이후의 ‘리얼월드 데이터(RWD)’ 표준화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황 대표는 “한국의 병원 데이터는 양질이지만 기관마다 표준이 달라 글로벌 확장이 어렵다”며 “데이터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문제는 민간이 해결할 수 없는 만큼 국가가 강력한 비전을 갖고 이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국과의 규제 환경 격차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황 대표는 “중국은 칭화대가 개발한 ‘AI 의사’가 진료하는 병원을 개원해 사람 없이 진단을 내리고 있다”며 “반면 한국은 AI를 의사의 보조 수단으로 쓸지, 대체제로 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없어 산업계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