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촉진법을 근간으로 한 ‘유치 중심 정책’이 오히려 상시 구조조정, 일방적 정리해고, 기술·이익 유출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외투기업의 경영 행태를 규율할 제재 장치가 사실상 부재한 가운데, 고용 불안과 노동조건 악화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성혁 민주노동연구원 원장은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노사공존과 지속가능한 외국인투자 환경 조성 방안 국회 토론회'에서 “외투기업에 대한 각종 세제·현금·부지 지원에도 불구하고 실제 고용 창출은 극히 낮다”며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그는 외투기업의 매출 비중이 2011년 14.7%에서 2021년 10.6%로 하락한 데 반해 고용 비중은 같은 기간 6.3%에서 5.5%로 줄어들었다는 통계조사를 들어 “매출 대비 고용 기여가 국내 기업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또 한국에 들어온 외투기업의 목적이 ‘수출’보다 ‘내수 진출’에 집중돼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외투기업의 국내 판매 비중은 72%에 달하며, 부품·원자재 조달 역시 42%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각종 지원을 받은 외투기업의 공급망·부품산업 육성에 대한 기여가 낮고, 본사와의 내부거래로 해외 조달이 강제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외투기업의 시장 철수와 단기 수익 회수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 원장은 “최근 금융·보험업을 중심으로 매년 평균 460개 외투기업이 철수하고 있다”며, “한국에서 벌어들인 이익이 재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배당·로열티 형태로 빠져나가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일부 기업에서는 당기순이익 대부분이 미처분이익잉여금으로 잠시 쌓였다가 전액 배당으로 처리되는 구조가 장기간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제시했다.
노동현장에서는 구조조정 위험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김 원장은 쿠팡·HP프린팅코리아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비정규직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고, 본사의 이전가격 조작으로 국내 법인이 고의적 적자를 떠안아 정리해고가 발생한다”고 문제 삼았다. 특히 기술력을 갖춘 프린터·엘리베이터 등 일부 독점 산업의 외국계 지배가 확대되면서 “국내 제조 기반 자체가 사라지는 위험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김 원장은 정부의 규제·감독 부재를 “제도적 공백”으로 지적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의 내국민대우 조항 때문에 외투기업을 별도로 제재하기 어렵고, 유한책임회사 형태를 활용한 공시 축소도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기관 역시 제 기능을 못 해 “부당 행위에 대한 국제적 견제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개선 방안으로 그는 △정리해고 시 사전 협의·보상 강화(근로기준법 개정) △이사회·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명문화(상법 개정) △회생 과정에서 노동자 참여권 보장(채무자회생법 개정) △외투기업의 공시 의무 강화(정규직·비정규직 현황, 배당·이익 유출 구조 등) 등을 제안했다. 아울러 핵심 전략산업의 무분별한 외국인 매각을 제한하는 별도 산업정책 필요성도 강조했다.
김 원장은 “외투기업 문제는 개별 노사 갈등이 아니라 사회·산업 정책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제재 수단과 공시·감독 체계를 갖추지 않는다면, 외국인투자 정책은 고용·산업 기반 약화라는 역효과만 키울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