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한 배달로봇이 각종 물품과 음식을 현관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미래. 가까이 있는 듯 보이지만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 각종 법 규제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로봇은 속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차’로 분류돼 도로교통법상 보도로 통행하지 못한다. 안전상의 이유로 공원에도 출입할 수 없고, 승강기안전관리법에 의해 건물 내 엘리베이터에도 탑승할 수 없다.
또한, 일상 속을 활보하는 로봇은 개인정보보호법과도 어긋난다. 로봇의 경로 확보를 위해 장착한 카메라에 의도하지 않았던 타인의 정보가 노출될 수 있어, 이를 방지하겠다는 것이 해당 법령의 취지다.
이처럼 혁신적인 미래를 이끌어낼 신산업 기술이 국내에서 꿈틀대고 있지만 낡은 규제에 갇혀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친환경 도심 운송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는 ‘초소형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기존 휘발유 이륜차에 비해 안전하고, 친환경차로써 온실가스 감축에도 기여하는 만큼 획기적인 제품으로 각광받지만 공차 중량 제한, 전용도로 금지 등이 보급 확대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규제로 인한 신산업 분야의 애로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최근 서울시가 주최한 100인 토론회 ‘규제풀GO! 기업날GO!'에서 한국로봇산업협회 이경준 본부장은 “특히 로봇은 다양한 산업에 적용되는 만큼 각 부처별 법과 충돌하고 있다”며 규제 혁신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일부 법이 개정되고 있지만 대상, 기간 등이 제한적이거나 또 다른 이해관계와 얽혀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이유로 다수의 기업이 불가피하게 해외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촘촘한 포지티브 규제, 포괄적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야”
한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는 데에는 기업뿐만 아니라 학계 전문가들도 입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새 정부의 과제’를 주제로 한국경영학회원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46.1%가 4차 산업혁명에 부합하는 산업지원을 위해 새 정부가 ‘낡거나 과도한 규제 정비’를 추진해야 한다고 꼽았다.
아울러, 중소 및 벤처기업 지원을 위해서도 53.9%가 ‘벤처진입장벽 해소를 위한 규제혁신’을 우선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봤다.
한국경영학회·한국경제학회·한국사회학화·한국정치학회 등 4대 학회가 공동주최한 학술대회에서 ‘자유시장경제와 제도개혁’을 주제로 발표한 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이경묵 교수는 “고도의 성장기에 접어든 한국은 제도적 틀이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제도 지체’의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한국이 초고속 경제성장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한 만큼, 현재의 상황적 특성과 지배적인 제도 간에 큰 괴리가 발생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기업분야 정책의 기본방향은 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들이 본연의 역할인 기업가 정신의 실천을 충실히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촘촘한 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포괄적인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규제 방식의 전환을 완수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부총리급의 ‘규제개혁 전담조직’을 설치해, 해당 부처 공무원들이 전력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규제 혁신에 팔 걷어 올리는 ‘정부’
긍정적인 측면은 정부도 규제혁신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는 규제혁신 100인 토론회에서 혁신 산업 관계자들의 규제혁신안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강력히 건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내 기업이 규제를 피해 외국에서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볼 때 속이 많이 상한다”며 “더 이상 그러한 일이 빈발하지 않도록 의무감과 책임감을 갖고 일하도록 하겠다”고 업계를 격려했다.
또한 고산 인수위 경제2분과 위원도 윤석열 당선인의 규제 혁파에 대한 강한 의지를 전했다. ‘이미 힘든 창업자들이 무거운 모래포대를 끌어안고 달리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 윤 당선인의 입장이다.
고 위원은 “새 정부에서 규제 개선과 관련해 여러 조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업계의 어려운 점들을 모아 인수위에 잘 전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