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글로벌 환경규범이 개별 기업의 성과 공시를 넘어 제품과 공급망 전체의 데이터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 수출 주도형 산업 구조를 가진 국내 기업들이 직면한 공급망 데이터 확보 과제를 풀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유엔환경계획(UNEP)은 2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기업에서 제품으로, 제품에서 공급망으로’를 주제로 세션을 공동 개최했다. ‘제3회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페스타’의 일환으로 열려, 환경규범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한국 산업계가 당면한 데이터 관리의 구조적 한계를 짚었다.
아드리아나 자카리아스 파라(Adriana Zacarias Farah) UNEP 산업·경제부문 재무 및 경제 전환 글로벌 하위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는 과거와 현재의 환경 규제 양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진단했다. 아드리아나 코디네이터는 "10년 전만 해도 기업들이 주로 묻던 것은 기업 보고에 관한 것이었다"며 기업 내부의 시스템 구축 여부가 주된 평가 기준이었던 때를 언급했다.
현재는 제품 단위의 환경정보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점점 더 많은 소비자와 구매자가 제품에 대해 묻고 있다”며 “환경 성과는 이제 기업 단위가 아니라 제품과 공급망 전체에서 확인된다”고 말했다. 제품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증명하기 위해서는 원청부터 하청까지 이어지는 전 밸류체인을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다.
아드리아나 코디네이터는 단순한 정보 공시를 넘어선 순환경제로의 근본적 체질 개선도 촉구했다. 건물·건설, 모빌리티, 플라스틱, 섬유, 식품 등 5대 핵심 부문에 순환경제를 도입하면 탄소 발자국을 60% 이상 감축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국내 기업에서는 공급망 데이터를 수집·관리할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상일 한국생산성본부(KPC) ESG컨설팅센터장은 ‘공급망에 무엇을 요구하기 시작했는가’를 주제로 발표하며 기업의 공급망 관리 현황을 소개했다.
김 센터장은 유럽연합(EU)의 공급망 실사지침(CSDDD)이 최근 개정을 통해 대상 기업 범위를 축소했으나, 협력사 통제나 리스크 개선 활동에 대한 실질적인 검증 강도는 오히려 거세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 기업이 답해야 할 데이터의 상당수는 해외 공급망에서 생성되며, 개별 기업의 대응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현장의 원청사와 협력사가 부딪히는 ‘공급망 관리 3대 고충’을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막대한 시스템 구축 및 유지 비용, 원가 및 단가 유출 우려에 따른 협력사의 데이터 제출 기피, 해외 평가 기관마다 제각각인 지표의 통일성 부족이 꼽혔다. 실제 한국생산성본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62.3%는 여건상 데이터 시스템 구축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으며, 59.4%는 ESG 전담 인력이나 부서가 전무한 상태로 나타났다.
비용과 신뢰성 문제를 한 번에 타개할 해법으로는 국가 차원의 ‘산업공급망 ESG 플랫폼’이 제시됐다. 중소 협력사가 하나의 플랫폼에 원천 데이터를 입력하면 공시·실사·평가 목적에 맞게 데이터를 가공해 원청기업이나 해외 바이어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김 센터장은 “공공데이터를 자동 연계해 입력 진입장벽을 낮추고, 2·3차 협력사까지 자연스럽게 데이터 생태계로 유입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플랫폼은 현재 정부 부처와 공동 기획 중으로 내년 본격적인 설계에 들어간다. 김 센터장은 이 과정에서 산업계와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수렴해 나가겠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