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33년 동안 사업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변함없음’이다.”
패킹·씰 전문기업 에스제이패킹(SJ패킹, 이하 에스제이패킹)을 이끄는 이현근 대표가 꼽은 경영 원칙이다. 시장은 끊임없이 달라졌지만 거래 관계와 신뢰만큼은 쉽게 바꾸지 않았다.
에스제이패킹은 산업기계와 중장비 등에 쓰이는 패킹·씰을 유통·가공하는 산업부품 전문기업이다. 약 5만7천종의 제품을 취급하고 있으며, 기성품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규격은 CNC 가공 설비로 제작해 공급한다.
거래는 지켰지만 사업 방식은 계속 바뀌었다. 국내 제품 판매에서 출발해 제품군을 넓히기 위해 해외 브랜드 수입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다양한 규격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재고를 늘렸다. 기성품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주문이 늘자 가공 설비까지 들였다. 이제는 반도체·이차전지 장비용 패킹을 직접 개발하기 위한 소재와 설계 기술 확보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취급하는 패킹·씰 제품은 약 5만7천종이다. 다음 목표는 유통과 가공을 넘어 소재와 설계 기술을 확보해 필요한 제품을 직접 개발하는 것이다. 변하지 않은 것은 거래의 신뢰였고, 끊임없이 바꾼 것은 시장에 대응하는 방법이었다.
국내 판매에서 출발해 해외 제품까지 영역 확대
1994년 설립된 에스제이패킹은 패킹·씰 유통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반도체 부품과 패킹 분야 영업 경험을 바탕으로 대리점을 열었고, 창업 첫 달 약 1천7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창업 3년여 만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거래하던 본사가 부도를 맞았다. 공급처가 흔들렸지만 이 대표는 사업을 접지 않았다. 이후 익월 결제와 현금 결제를 중심으로 거래 조건을 관리하며 독자적인 공급 기반을 만들어갔다.
사업의 방향이 본격적으로 달라진 계기는 해외 전시회였다.
수출길을 찾으러 간 전시회에서 오히려 수입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대표는 “제품을 해외에 팔기 위해 전시회에 갔는데 현지에서 국내 시장에 필요한 제품과 브랜드가 눈에 들어왔다”며 “그때부터 해외 제품을 국내에 공급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검토했다”고 말했다.
해외 전시회에서 확인한 가능성은 2013년 전후 수입 확대와 제품군 다변화로 이어졌다. 이 대표는 이를 “회사를 운영하면서 내린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취급 제품은 약 5만7천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리데나(리테이너) 관련 제품만 약 2만7천종이다. 밀리미터 규격뿐 아니라 해외 장비에 쓰이는 인치 규격까지 폭넓게 확보해 고객이 요구하는 규격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기성품 판매와 직접 가공 ‘투 트랙’으로 고객요구 대응
제품을 많이 보유하는 것만으로 모든 주문에 대응할 수는 없었다. 규격이 맞는 기성품이 없을 때는 직접 가공해 공급한다.
회사는 오스트리아 씰메이커(Seal Maker)의 CNC 가공 설비 2대를 운용한다. 회사 측에 따르면 최대 약 850파이(Ø)까지 가공할 수 있다. 재고에 없는 규격은 이 설비를 활용해 주문에 맞춰 제작한다.
핵심은 ‘재고와 가공’의 결합이다. 산업기계나 중장비 한 대에도 여러 규격의 패킹이 들어가는 만큼 모든 제품을 주문 제작하기보다 확보한 기성품을 먼저 사용하고 없는 규격만 가공한다. 이 대표는 “기성품과 직접 가공을 함께 활용해 고객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쌓아둔 재고, 공급망 위기에서 제 몫 해냈다
평소에는 비용으로 보일 수 있는 재고가 공급망이 멈추자 경쟁력이 됐다.
에스제이패킹은 2013년 이후 수입 품목을 늘리면서 재고도 꾸준히 확대했다. 판매된 제품을 다시 채워 넣는 방식으로 다양한 규격의 재고를 유지했다.
코로나19로 해외 생산과 물류가 동시에 흔들리자 쌓아둔 재고의 가치가 드러났다. 이 대표는 “해외 공장 가동이 멈추고 수입도 어려워졌지만 이미 상당한 재고를 확보하고 있어 공급 차질에 대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매출도 2020년 이후 증가세를 보였다. 이 대표에 따르면 매출은 2020년 이후 매년 약 8%씩 오르고 있는 추세다.
바꾼 것은 많아도 지킨 것은 ‘변함없음’
국내 판매에서 수입·유통으로, 다시 직접 가공으로 사업 영역은 달라졌다. 이 대표가 바꾸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거래 관계다. 그가 말하는 ‘변함없음’은 한 번 맺은 거래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데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대표는 “사업을 하면서 맺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한번 쌓은 믿음을 오래 이어온 것이 지금의 에스제이패킹을 만든 힘”이라고 말했다.
단순 판매 넘어 반도체·이차전지 분야로 영역 넓힌다
이 대표는 에스제이패킹이 앞으로 진출하려는 분야로 반도체와 이차전지 제조장비, 석유화학 분야를 지목했다.
다음 단계는 자체 제품 개발이다. 에스제이패킹은 반도체 제조장비에 들어가는 패킹과 씰을 직접 개발해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반도체 장비용 패킹은 해외 브랜드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차전지 제조장비 역시 패킹 수요가 많은 시장인 만큼 자체 개발 제품으로 공급 영역을 넓히려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기업연구소 설립도 준비하고 있다. 기존 연구 전담부서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 연구진과 소재와 패킹 설계 기술을 연구한다는 구상이다. 제품을 들여오고 가공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자체 소재와 설계 역량을 갖춘 기업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이 대표는 후배 기업인과 기술인에게도 한 분야를 오래 파고드는 힘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방향을 빨리 찾고 한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며 “오랫동안 파고들다 보면 결국 그 분야에서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출 기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33년 동안 에스제이패킹이 걸어온 길도 이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가지 제품군을 놓지 않은 채 시장이 요구하는 판매와 수입, 재고, 가공의 방식을 계속 바꿨다. 이제 회사가 준비하는 다음 변화는 직접 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