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인공지능(AI)이 현실 세계에서 직접 움직이고 판단하는 피지컬 AI로 확장되면서 로봇 산업의 경쟁 구도도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로봇의 동작 성능을 높이는 것을 넘어 실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확보와 시뮬레이션, 기존 설비의 로봇화, 촉각 데이터 구축, 규제 정비 등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4일 국회에서 한국 AI‧로봇산업협회 주관으로 열린 ‘로봇 강국 대한민국, Next Move’토론회에서는 로봇 관련 기업과 기관,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 로봇 산업의 고도화를 위한 방향 모색에 나섰다.
“로봇 경쟁, 결국 데이터 확보가 관건”
최서호 현대자동차그룹 전무는 미국과 중국이 로봇 산업의 밸류체인을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한국이 특히 데이터 확보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동차 산업에서 축적한 제어와 전동화 기술을 활용할 수 있지만, 로봇이 실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물리적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 전무는 “결국은 로봇 관련 경쟁이 데이터 경쟁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텍스트 데이터가 풍부했던 생성형 AI와 달리 로봇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는 사람이 실제 로봇을 움직이며 만들어야 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에서 마중물을 놔주면 기업들, 스타트업 모두 모여서 데이터를 같이 만들고 공유하고 표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로봇이 현장에 투입돼 데이터를 확보하고 다시 학습에 활용하는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증체계 정비와 공공수요를 통한 초기 시장 형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실 세계 데이터 확보 방식 바꿔야
전혜정 LG전자 연구위원은 피지컬 AI의 핵심 과제로 현실 세계에서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식의 한계를 꼽았다. 기존 AI 모델과 달리 로봇은 학습한 내용을 실제 움직임으로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시뮬레이션과 실제 환경 사이의 차이를 줄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 연구위원은 “리얼 월드에서 데이터를 모으는 게 굉장히 어렵다”며 “시뮬레이션이나 합성 데이터를 활용하고, 사람의 동작을 로봇의 관절값으로 변환하는 방식 등을 통해 데이터 확보량을 늘리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실패 데이터를 다시 학습에 반영하는 순환 구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연구위원은 “현장에서 해보고 실패 상황이 생기면 거기에 대해서 어떤 데이터를 더 모을지 또 결정을 해야 되고, 거기서 다시 데이터를 모으고 이 반복되는 순환을 필요로 한다”고 언급했다.
“피지컬 AI, 휴머노이드에만 한정해서는 안 돼”
윤석준 포스코DX 로봇자동화센터장은 피지컬 AI를 휴머노이드 중심으로만 바라보는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철강과 같은 연속공정 산업에서는 기존 설비에 센서와 제어 시스템을 결합해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로봇화’ 역시 피지컬 AI의 중요한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윤 센터장은 “크레인은 기계 장치이고 사람이 운전하는 기계 장치지만, 여기에 센서를 달고 제어 시스템과 연결한 통합 제어를 구축해서 컴퓨터가 인식하고 판단해서 자동으로 할 수 있으면 저희는 로봇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철강이나 2차전지처럼 대형 설비가 중심이 되는 연속공정에서는 사람과 산업용 로봇, 자율이동장비 등이 기존 설비와 함께 작동하도록 만드는 방식이 현실적인 피지컬 AI 적용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 현장을 그대로 반영한 가상 환경과 시뮬레이션 기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 센터장은 “데이터가 있는데 물리 데이터라는 것은 상당히 획득하기가 힘들다”며 “데이터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뮬레이터에 대한 개발 발전도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그는 현장 숙련자의 경험과 노하우인 암묵지를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보호법 등 제도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법·제도적 불확실성의 해소도 함께 주문했다.
“휴머노이드의 빈 공간은 ‘손의 감각’”
이윤행 에이딘로보틱스 대표는 휴머노이드가 사람처럼 실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각과 동작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며 촉각과 힘을 포함한 ‘손의 감각’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현재 로봇 기술이 걷고 뛰는 등 움직임에서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빨래를 개거나 물체를 정교하게 다루는 작업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하려면 손의 감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람이 물체를 잡을 때는 시각뿐 아니라 손끝에서 느껴지는 접촉력과 힘, 물체의 상태 등을 함께 활용하지만 로봇은 영상이나 카메라 정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농구선수의 슛 연습을 예로 든 이 대표는 “영상을 통해 로봇이 학습을 하더라도 모션만 알 뿐이지 손끝에 얼마큼 힘이 들어갔는지, 어떤 각도로 던져야 되는지는 모를 수밖에 없다”며 영상 데이터만으로는 실제 작업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는 현장에 있는 데이터를 취득할 수 있는 장비들을 빠르게 만들어서 암묵지를 데이터화하고 휴머노이드에 이전하는 학습 프레임워크 제작이 제시됐다.
이 대표는 “정부 지원을 통한 실증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작업 현장에 로봇을 투입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며 “사람처럼 느끼고 사람과 함께 안전하게 일하는 로봇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