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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노동] 디지털 상사와 낡은 노동법의 충돌
임지원 기자|jnews@kid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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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노동] 디지털 상사와 낡은 노동법의 충돌

플랫폼 노동 100만 시대 ‘보이지 않는 지휘’… 2026년 노사관계의 시험대

기사입력 2026-01-07 18: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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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노동] 디지털 상사와 낡은 노동법의 충돌
(AI 생성 이미지)

[산업일보]
새벽녘 머리맡의 스마트폰 앱이 오늘 수행해야 할 업무 동선을 매끄럽게 그려낸다. 상사의 대면 지시도, 사무실의 출근부도 사라진 자리를 메운 것은 정교하게 설계된 AI다. 기술의 진보는 일의 자율성을 높인 듯 보이지만, 알고리즘이 설정한 평점과 데이터의 그물망 속에서 노동의 가치가 실시간으로 수치화되는 ‘디지털 감시’의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6년 대한민국 노동시장은 이러한 기술적 대전환과 기존 법·제도의 충돌이라는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26년 노사관계 전망과 과제 세미나’에서는 ‘보이지 않는 상사’가 지배하는 새로운 일터의 규범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AI와 알고리즘이 사실상 인사권을 행사하는 현실을 반영해 노동법의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근로계약 중심의 보호 체계로는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노동 형태를 포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AI 알고리즘에 의한 지휘·감독을 받는 플랫폼 종사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플랫폼 종사자는 약 92만 4천명으로 집계됐으며, 2024~2025년을 거치며 100만 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상당수는 앱을 통해 업무를 배정받고 알고리즘이 산정한 평점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는 등 실질적인 종속 관계에 놓여 있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기는 여전히 어려운 실정이다.

[AI 시대의 노동] 디지털 상사와 낡은 노동법의 충돌
5일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에서는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공인노무사회가 주관하는 '2026년 노사관계 전망과 과제 세미나'가 열렸다.

권혁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노동법 제도의 업데이트가 현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체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AI와 로봇의 노동시장 진입은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사용자 개념을 희석하고 노동을 파편화하고 있다”며 “이제는 고용관계의 형식보다 일하는 사람 자체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고리즘에 의한 지휘·감독은 기존의 인적 관리보다 더 세밀하고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박소민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와이즈)는 “AI가 업무 배정부터 성과 평가까지 전담하면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의 투명성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며 “노동자들은 왜 특정 업무에서 제외됐는지, 왜 낮은 평점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 채 알고리즘의 판단에 종속되는 정보 비대칭 상황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디지털 약자’의 확산은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야기한다. 기술 혁신은 생산성 향상의 기회인 동시에, 일부에게는 일자리 대체 위험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동반한 위협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기술 혁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정한 전환’의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가 2026년 노사관계의 핵심 쟁점”이라며 “국가는 기업에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실질적인 재교육 지원과 사회 안전망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제사회는 이미 ‘일하는 사람’ 중심의 보호 체계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2024년 3월 최종 승인된 유럽연합(EU)의 ‘플랫폼 노동 지침(Platform Work Directive)’은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플랫폼 종사자를 근로자로 추정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알고리즘이 내린 중대한 결정에 대해 ‘인적 개입(Human Oversight)’과 설명 의무를 명시했다. 디지털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제도화한 셈이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는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직 등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 권리를 부여하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법’ 제정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알고리즘의 공정성 확보, 부당한 대우에 대한 이의 제기권,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 접근권 보장 등이 주요 내용이다.

정부 역시 ‘책임 있는 AI 전환’을 위한 정책 마련에 분주하다. 고용노동부는 알고리즘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기술 전환 과정에서 노사 간 상호 협의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박소민 노무사는 “AI 도입 전 고용영향평가를 수행하고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노무사 등 전문가 그룹이 디지털 노동 규범의 설계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2026년 노사관계의 핵심 의제는 ‘공정한 기술 전환’으로 수렴된다. AI 시대의 노동은 생산성 향상이라는 성과와 함께 새로운 보호 공백을 드러내고 있다. 알고리즘이 관리하는 일터에서도 노동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규범을 마련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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