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구조의 변화와 급격한 기술 전환기 속에서 산업계의 생존 전략이 ‘단순 기부’를 넘어 ‘전략적 인재 육성’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술혁신의 속도가 대학 교육의 속도를 앞지르는 시대에, 기업과 교육 현장의 결합을 통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22일 서울 강남구 소재 과학기술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5 과학기술문화 컨퍼런스’에서는 기업과 공공이 함께 구축하는 과학기술 기반 사회공헌 협업 플랫폼의 성공사례들이 집중 조명됐다.
이날 발제에 나선 정진택 대구경북과학기술원(DIGIST) 이사장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등장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직업 구조의 변화를 언급하며 대학과 기업의 ‘협업 문화’를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도 결국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문화’의 힘”이라며 카카오의 수평적 소통 문화를 예로 들었다.
그는 고려대 총장에 재임하며 SK하이닉스, 삼성전자, 현대차그룹 등과 함께 만든 ‘채용 연계형 계약학과’ 사례를 소개하며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입학 단계부터 함께 챙기는 유연한 모델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기업은 대학의 역량을, 대학은 기업의 절박함을 서로 투명하게 공유할 때 적극적으로 협업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자윤 삼양라운드스퀘어 매니저는 ‘미래의 불닭볶음면’을 화두로 과학과 문화를 결합한 인재 발굴 사례를 공유했다. 삼양은 ‘라면’이라는 일상적인 소재에 푸드테크를 접목, 청소년들이 과학을 놀이처럼 즐길 수 있는 ‘라운드스퀘어 프라이즈’를 운영 중이다. 이 매니저는 “내일의 혁신은 오늘의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된다”며 “이그노벨상처럼 사람을 웃게 하고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진심이 인재 육성의 동력”이라고 밝혔다.
장윤희 주식회사 보령 본부장은 제약회사가 우주 산업에 뛰어들게 된 사업적 비전과 사회적 책임을 연결했다. 보령은 ‘Humans In Space(HIS) Youth’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들이 우주의학 분야를 탐구할 기회를 제공한다. 장 본부장은 “600년 전 대항해 시대에 괴혈병을 해결한 레몬이 영국의 패권을 만들었듯, 우주 장기 체류를 위한 의학 기술은 미래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아이들의 꿈을 우주로 확장하는 것은 기업의 당연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감창근 두산연강재단 팀장은 현장 교육의 최전선에 있는 과학교사 지원사업과 마이스터고 장학 사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8년째 이어온 ‘과학교사 학술 시찰’을 통해 교사들이 글로벌 산업 현장을 직접 체험하게 함으로써 그 경험이 학생들에게 선순환되도록 돕고 있다. 감 팀장은 “최고의 선생님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는 것이 결국 기술 인재 육성의 지름길”이라며 특히 산업 현장과 직결된 마이스터고 학생들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 체계를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정진택 이사장은 정부 예산과 기업 CSR 자금의 차이를 짚으며 민·관 협력의 실무적 효용성을 강조했다. 국민 세금인 정부 과제는 집행에 부담이 크지만, 기업 자금은 의미 있는 가치 창출을 위해 훨씬 유연하고 제약이 없이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한국과학창의재단과의 협업을 통해 공신력을 확보하고, 행정적 공문을 활용해 민간 단독으로는 어려운 연구 시설 섭외 등 실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정 이사장은 기업이 단순히 자사 인재 채용에만 국한되지 않고 해당 산업 생태계 전체를 키운다는 관점으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