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경기도 5070 일자리박람회’ 현장을 시작으로, 중장년 구직자와 채용기업의 현장 목소리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은퇴 이후 다시 일하기를 원하는 이들의 현실과 과제를 조명한다.
정년퇴직 인력이 급증하는 가운데, 산업 현장에서 숙련 기술의 단절과 인력 공백이 현실화되고 있다. 중장년층은 경력과 전문성을 갖췄음에도 채용 과정에서 연령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면서, 고용시장의 비효율이 구조화되고 있다. 지속가능한 노동시장 유지를 위한 제도 설계와 역할 재정의가 시급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중장년 고용 지원을 위해 여러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경력인재지원’ 사업이나 고용노동부의 ‘시니어 일자리 지원금’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지원의 범위와 지속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장년 특화 일자리 매칭 플랫폼 ‘커넥티드456’ 임수인 과장은 “지원금이 대부분 3개월에 그친다”며 “조직에 적응하고 업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하기까지는 더 긴 시간과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규직 전환 연계, 일정 근속 시 인센티브 지급 등 지속형 인력 유입 구조가 제도 설계에 반영돼야 기업 참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제안도 이어졌다. 임 과장은 지원 제도가 지속 가능한 고용 유인이 되지 못하고 단발성에 그친다면, 기업과 구직자 모두에게 ‘한 번의 실패’로 기억될 것이라 우려했다.
지원 제도의 지역·예산 제약도 아쉬움을 낳는다. 경력인재지원 사업은 서울 거주자만 참여할 수 있고, 고용노동부의 시니어 고용 지원금은 매년 예산이 빠르게 소진된다.
올해 중장년 계속고용 및 재취업 관련 정부 예산은 674억원이었다. 고령자계속고용장려금 확대, 중장년인턴제 신설, 중장년 내일패키지 및 폴리텍 신중년 특화과정 확충 등이 포함됐다.
내년도 노동부 예산안(37조 6천157억원)은 ‘활력 있는 고령화 사회’를 목표로, 일자리 기회 확대 및 재취업 지원에 547억원을 반영했다. ‘고령자통합장려금’을 신설하고, 인력충원이 필요한 업종에 취업한 중장년에게 6·12개월 근속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일손부족일자리 동행인센티브’ 시범사업도 예정됐다.
정년 이후 고용 연계를 위한 ‘계속고용제도’에 대한 논의도 확대되고 있다. 현행법은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규정하지만, 이후 재고용은 기업 재량에 맡겨진다. 정부는 정년 연장 또는 재고용 기업에 월 30만 원씩 최대 3년간 ‘고령자계속고용장려금’을 지원 중이다.
다만 제도의 실효성은 제한적이다. 재고용이 주로 기간제·시간제 중심으로 이뤄져 임금 수준 하락과 직무 단절이 발생하고, 중소기업의 도입률도 낮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일부 산업에서는 정년퇴직 인력을 교육, 품질관리, 현장 멘토 등으로 재배치하는 ‘연착륙형 계속고용’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제조·물류·시설관리 등 인력 수급이 불안정한 분야에서 숙련 인력을 조직 내에 유지하는 전략으로, 단순 고용 연장을 넘어 직무 재설계가 병행된다.
해외 주요국은 고령자 계속고용 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2006년부터 ‘65세 고용확보제도’를 도입해 2022년 기준 전체 기업의 70.6%가 정년 이후 재고용을 시행하고 있다. 핵심은 단순 연장보다 ‘역할 재배치’에 있다. 도요타는 정년퇴직자를 숙련 멘토로 전환해 신규 직원 교육과 품질 관리에 투입하며, 탄력근로제를 적용해 물리적 부담은 줄이고 조직 내 경험 전수는 유지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독일과 스웨덴은 각각 정년 연장을 통해 고령 인력의 노동시장 잔존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으며, 미국과 영국은 정년제 자체를 폐지했다.
이러한 선진국의 변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령자를 ‘예외적 고용 대상’이 아니라 노동 공급의 중심 축으로 재위치시키는 노동시장 구조 자체의 재설계가 요구된다.
중장년 재취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인크루트가 실시한 2024년 설문조사에서 직장인의 59.6%는 중장년 동료와의 협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주요 이유로는 ‘경력과 업무 지식 활용’(70.9%)이 꼽혔다. 본인도 향후 재취업을 희망한다는 응답은 33.3%였다.
다만 중장년 구직자는 ‘현재 수준과 유사한 처우’를 선호하는 비중이 61.8%로, 기업 기대와의 간극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해 시범사업으로 처음 개최된 ‘경기도 5070 일자리박람회’는 10월부터 12월까지 두 달간 31개 시군에서 22회 진행됐다. 9천300명이 다녀갔고, 6천827건의 현장 면접이 이뤄졌다. 이 중 3천165명이 정식채용 절차를 거쳐 467명(14.8%)의 채용이 확정됐다.
경기도청 일자리경제정책과 김민지 주무관에 따르면, 올해는 사전 이력서 코칭과 직무 컨설팅이 강화되며 현재까지 589명이 취업을 확정했다. 11월 기준 1만8천여 명이 방문했고 26회에 걸쳐 진행되는 올해 박람회는 12월 3일까지 계속된다.
‘계속 일할 수 있는 구조’는 더 이상 미래 과제가 아니다. 정년제 개편, 직무 재설계, 조직문화 전환이 함께 작동할 때, 고령 인력의 숙련이 산업 내부에 남는다. 고용시장의 지속가능성은 지금의 제도 선택에 달려 있다.
‘노동의 2막’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