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확보와 기후위기 대응, 전력망 운영 등에 드는 비용을 원전의 경제성 평가에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주무 부처인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대국민 공론화를 거쳐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관련 해답을 담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여당 일각에서도 원전 확대를 맹목적으로 추진하는 것에 대한 강한 우려와 함께 꼼꼼한 수요 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원전 경제성 분석 정책토론회 ‘첨단산업 전력수요 급증, 원전이 해답인가?’가 개최됐다. 국회 기후위기 탈탄소 경제포럼과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최기상·김주영·곽상언 의원이 주최했으며, 에너지전환포럼과 우원식·박지혜 의원실이 주관했다.
한병섭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 비상임 위원은 이날 토론에서 ‘플랜B’ 없는 원전 확대 정책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한 비상임 위원은 “2050년까지 방폐장을 확보한다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라며 “국민 설득과 부지 공모에 10년, 지하 500m 암반 공간을 뚫고 실증하는 데 추가로 30년이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한 비상임 위원은 기한 내 처분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원전 가동률이 30% 수준으로 떨어지고 균등화발전원가(LCOE)가 2배 가량 상승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 분석했다.
이어 “현재 책정된 76조 원 규모의 사후처리 기금은 2050년까지 발생하는 핵연료만 가정한 수치”라며 “수명 연장에 따른 비용 폭증이 우려됨에도 전담 기구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가 정권 기조에 따라 정책이 요동칠 수밖에 없는 근본적 한계를 지녔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사고 위험 비용과 계통 불안정성 문제도 주요 비용 유발 요인으로 다뤄졌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일본 후쿠시마 사고의 공식 피해 견적은 23조 4천억 엔(약 223조 원)에 달하며 이는 모두 소비자와 납세자에게 전가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원전의 천문학적 사고 손해 비용은 대수의 법칙에 위배돼 보험업계조차 감당을 거부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석 전문위원은 또 한국과 같은 고립 전력망에서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동시 확대될 경우, 계통 유연성 부족으로 태양광 출력 제어와 원전 출력 감발이 서로 충돌하는 ‘제로섬 게임’ 양상이 벌어진다고 경고했다.
윤순진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 역시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한 냉각수 기능 저하 등 기후위기로 인한 원전의 취약성 극복 비용도 경제성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며 극단적 기상 현상에 취약한 다수호기 밀집 부지의 위험성을 거론했다.
비용 은폐 논란에 대해 강경택 기후에너지환경부 전력산업정책과장은 “국민적 우려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향후 3개월간 숙의형 민주주의 형태의 원전 공론화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이 결과를 바탕으로 수급 안정성과 계통 여건 등을 12차 전기본 정부안에 담아내겠다”고 밝혔다.
국회 차원에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제동이 걸렸다. 조국혁신당 서왕진 의원(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위원)은 “3개월간 공론장을 열겠다고 하지만, 메가 프로젝트를 핑계로 원전 확대를 기정사실화하려는 프로세스가 아닌지 우려된다”며 “AI 데이터센터의 실제 필요성과 전력 수요 자체가 정확히 설정됐는지부터 짚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여당에서도 신중론이 이어졌다.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소속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가 다소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며 원전 중심의 에너지 믹스 재편에 우려를 표했다. 토론회를 공동 주관한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독일처럼 신규 데이터센터 구축 시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국제적 흐름에 맞게 수요를 관리해야 한다”며 무분별한 원전 쏠림 현상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