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일보]
기업은 인공지능(AI)으로 서류를 평가하고 현장에 즉시 투입할 ‘경력직’만 찾는데, 청년들은 연 455만 원을 ‘자격증’과 ‘어학 스펙 쌓기’에 쏟아붓고 있다. AI 기술 전환과 철저한 실무 중심 채용 기조가 맞물리면서 산업계 채용 시장에 구조적 미스매치(불일치)가 심화되고 있다.
재단법인 교육의봄은 9일 서울 용산구 소재 교육의봄 SPACE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인사(HR) 실태를 담은 ‘2025~2026 채용동향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고용정보원 등 14개 기관 및 기업이 개별 실시한 35건의 설문조사를 종합 분석한 결과다.
HR 실무 도구로 정착한 AI… 인재 평가 핵심도 ‘AI 역량’
눈에 띄는 변화는 채용 업무 전반에 걸친 'AI 자동화'다. 기업은 서류 검토와 평가 등 소모적인 업무를 AI에 맡기며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두들린 조사 결과, 채용담당자의 58.0%가 채용 업무에 AI를 매일 또는 주 3~4회 이상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하유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2.4%가 AI를 채용에 활용하거나 시범 도입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현진 선임연구원은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 AI 활용 증가를 채용 시장의 주요 트렌드로 꼽은 응답이 지난해 14.2%에서 올해 30.6%로 급증했다”며 “한국바른채용인증원 조사에서도 AI 도입에 따른 인력 축소 우려가 지난해 6위에서 올해 2위로 올라서는 등 뚜렷한 변화가 감지됐다”고 짚었다.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 역시 ‘AI 역량’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 기업의 69.2%가 선호 인재상 1위로 ‘AI 역량’을 지목했다.
“가르칠 시간 없다”… ‘실무 경험·경력직’ 압도적 쏠림
경영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은 신입 사원 교육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현장에 즉각 투입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2025년 신규 채용에서 우선되는 평가 요소로 ‘직무 관련 업무 경험(81.6%)’이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신규 구직자의 진입 장벽 상향으로 직결됐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는 ‘경력 채용만을 원하는 기업’이 82.0%에 달한 반면, ‘신입 직원만을 채용하는 기업’은 2.6%에 머물렀다.
김 선임연구원은 “경력직 중심 채용 재편으로 신입 구직자의 노동시장 진입 통로가 좁아진 현실”이라며 “청년에게 경력을 쌓을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구조적 문제인 만큼 사회·정책적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업은 ‘실무’ 원하는데 청년은 ‘스펙’ 올인… 취업 사교육비 연 455만 원
기업이 직무 경험을 중시하는 것과 달리 구직자들은 자격증 취득에 집중하는 ‘미스매치’ 현상도 확인됐다.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구직자들이 사교육비를 주로 투자하는 항목은 ‘전공 자격증 취득(64.9%)’과 ‘영어 점수 및 응시료(56.7%)’였다.
취업 문턱이 좁아지며 청년들의 경제적 고통도 가중되고 있다. 취업 사교육비는 월평균 38만 원, 연평균 455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 연평균 227만 원에서 3년 만에 2배 이상 상승한 수치다. 취업 준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는 응답자는 71.1%에 달했고, 73.8%는 구직 활동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김 선임연구원은 “취업 사교육은 초중고 사교육 부담이 청년기까지 연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 구조적 과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초중고 사교육비 실태를 정례적으로 조사 발표하듯, 취업 사교육에 대해서도 국가 차원의 정기적 실태 파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핵심 퇴사 사유로 떠오른 ‘직무 불일치’… 올해 회복 조짐도
경력·실무 중심 채용 기조 이면에는 심각한 '조기 퇴사 리스크'가 자리한다. 인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신입사원의 1~3년 내 조기 퇴사 비율은 60.9%에 달했으며, 주된 이유는 ‘직무 적합성 불일치(58.9%)’였다.
안상진 부대표는 퇴사 원인의 구조적 변화를 짚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상사 및 동료와의 불화가 2위에 오를 만큼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나, 최근 인크루트 조사 결과 해당 항목은 6위권으로 밀려났다. 동료와의 갈등 대신 보상 불만, 직무 불일치, 성장 정체가 핵심 퇴사 요인으로 떠올랐다. 기업이 스펙 이상으로 조직 융화력을 뜻하는 ‘팀 핏(Team Fit)’ 검증을 강화하는 이유다.
한편, 위축됐던 채용 시장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채용 계획 수립 기업이 2025년 60.8%에서 2026년 66.6%로 반등한 것이다. 안 부대표는 “올해 3월까지의 데이터를 토대로 한 결과이기 때문에, 추후 발표되는 자료를 통한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면서도 “정부 주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일부 빅테크 기업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500대 기업 전반에서 나타나는 유의미한 신호”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