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일보]
‘인력에 의한 기술 유출’과 ‘외국인 투자에 의한 기술 탈취’ 두 유형에 대한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정아 삼성SDS 그룹장은 2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2 산업보안 컨퍼런스’에 참석해,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한국의 처벌 실태로 ‘높은 무죄율’과 ‘낮은 처벌 수위’를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 기술 유출 범죄의 경우, 일반 형사사건 대비 무죄율이 무려 6배나 높은 19.1%”이며 “2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는 경우가 2.2%에 불과하고, 징역형을 받더라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수치가 83%”라고 했다.
유죄 선고를 받는 10명 중 단 한 명만 실형을 사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이 그룹장은 기술 유출 범죄의 무죄율이 높은 이유는 부정한 목적성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재택근무 중 회사 자료를 촬영해 사진으로 보관한 직원이 중국 업체와 접촉한 사례의 재판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에서 기술 자료의 중요성이나 회사 규정 위반, 중국 업체와의 소통은 모두 입증됐으나, 실제 피고인이 업무 숙지를 위한 촬영이었다는 게 인정됨에 따라 부정한 목적성의 입증 부족으로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그룹장은 “기술 유출 범죄는 중요 기술을 허용된 범위에서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처벌될 수 있는 입증 요건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 자료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도 기술 유출 범죄의 무죄율이 높은 이유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유출된 방대한 자료를 수사기관이 단독으로 선별하는 것은 증거 누락의 가능성이 높고, 재판 과정에서도 실제 피해자인 기업이 기술에 대한 설명 기회가 부족해 기술 자료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기술 유출 과정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인 기업의 참여권을 보장하거나 기술 유출 범죄의 전문재판부 설치가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술 유출 범죄의 처벌 수위가 낮은 것은 법정형 대비 낮은 양형 기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그룹장은 “우리나라는 2019년도에 법 개정으로 기술 유출 범죄의 법정 최고형이 국내는 10년, 국외는 15년으로 상향됐다”면서도 “양형 기준은 2017년 이후 그대로 유지돼, 법정형 대비 20~25%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비슷한 횡령 배임 사건과 비교하면, (기술 유출 범죄에 관한) 횡령 배임 사건의 양형 기준이 법정형 대비 50% 수준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낮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처벌 수위가 낮은 이유에는 기술 유출 범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감경 요소도 있다.
이 그룹장은 “피고인이 형사처벌 전력 없는 초범, 기술이 이익화되기 전 회수 등이 인정돼 실제 처벌 수위가 낮게 선고되고 있다”면서 “기술 유출 범죄는 대표적인 화이트칼라 범죄고 잠재적으로 이익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감경 요소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외국인 투자에 의한 기술 탈취 관련 법‧제도 개선사항으로 외국인 투자 규제 정책에서 기술 수출 규제 5개 분야의 핵심 인프라, 개인 정보 등 심사 대상 확대, 외국인 투자 규제의 50% 제한 요건 강화, 안보심의 전문위원회의 법적 기구 격상, 직권심사제 도입 등이 제시됐다.